오랜 법정 투쟁 끝에 예외 인정 받아
중남미 국가 중 콜롬비아·쿠바만 안락사 허용
안락사 및 조력 존엄사가 불법인 페루에서 희귀 퇴행성 질환으로 온몸이 마비된 40대 여성이 수년간의 투쟁 끝에 예외를 인정받아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은 희귀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던 아나 에스트라다(Ana Estrada·47)의 변호사는 에스트라다가 오랜 법정 투쟁 끝에 의료 지원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고 지난 21일 안락사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심리학자였던 에스트라다는 2022년 법원으로부터 의료지원을 통해 사망할 권리를 얻어냈다. 에스트라다는 페루에서 안락사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에스트라다는 근육 염증으로 근력이 저하되는 퇴행성 질환인 다발성근염 환자였다. 10대 때부터 증상이 나타났고, 20세부터는 스스로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다.
에스트라다는 이런 상황에서도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 학위를 취득하고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를 살 만큼 돈을 벌었고 부모로부터도 독립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는 상태가 더욱 악화해 더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게 됐다. 에스트라다는 침대에 누워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삶을 이어왔다. 결국 에스트라다는 안락사를 통해 원할 때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에스트라다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처지를 "내 몸 안에 갇힌 죄수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에스트라다는 자신이 낸 소송에 대해서는 '죽음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나는 삶에서 고통을 더 견디지 못하게 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고 차분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때 안락사하고 싶다"고 했다. 에스트라다의 변호사는 그가 안락사로 사망한 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한 에스트라다의 투쟁은 페루인들에게 이 권리의 중요성을 알렸다"며 "그의 투쟁은 국경을 초월했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페루는 중남미 지역의 다른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를 금지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 중에는 콜롬비아와 쿠바가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에콰도르에서는 지난 2월 특정 조건 아래 행해진 안락사는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안락사 허용하는 국가 점진적으로 늘어
세계적으로 개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엄격한 요건 아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스위스는 안락사의 일종으로도 분류하는 조력 사망을 1942년부터 허용했다. 2002년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형태의 안락사까지 법적으로 허용했다. 미국은 1997년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올해 초 기준 11개 주에서 안락사 또는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2016년 안락사를 허용한 캐나다에서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정신질환자도 안락사를 택할 수 있게 허용했다. 2020년 뉴질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안락사를 허용하기도 했다. 안락사나 조력 사망을 도운 이(의사, 가족)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길을 터준 나라들도 있다. 2019년 이탈리아, 2020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2024년 에콰도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안락사나 조력 사망을 현재 금지하는 나라에서도 논쟁이 번지고 있다. 영국은 안락사를 도울 경우 현행법상 살인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다. 지난 2022년에는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본인의 희망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치는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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