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 잇달아 수용
내부 실무 조직 보강, ELS 투자자 협의…전문가위원회 신설
하나은행은 이사회 결의 이틀 만에 첫 배상금 지급 마무리
모든 투자자가 자율배상 받아들일지 미지수
피해자 모임 대표 "배상안에 매우 불만족" 비판
금융당국의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신속한 자율배상 압박에 주요 시중은행이 임시 이사회를 통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기준안을 잇달아 수용하고 내부 조직 보강, 외부전문가 포함 자문조직 신설 등에 나선다. 발 빠르게 조직을 정비한 하나은행은 이사회 자율배상 결의 이후 이틀 만에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배상금 지급사례를 내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율배상을 결정한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NH농협증권,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은 내부 배상 실무조직과 검토를 담당할 외부전문가 조직을 구축해 4월부터 본격적인 배상에 나설 방침이다. 올해 홍콩ELS 만기 도래 규모는 KB국민은행이 6조7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 2조3300억원, NH농협은행 1조8000억원, 하나은행 1조4000억원, 우리은행 400억원 순이다.
지난 2021년 1∼7월에 판매된 홍콩ELS 상품을 중심으로 손실 배상 규모를 추산한 결과 은행권의 배상 규모는 적어도 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은행권의 올해 1∼7월 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가 10조원에 달하고, 확정 손실을 50%로 가정할 경우 평균 40%를 배상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시중은행은 대부분 이 배상 추정액을 올해 1분기 충당부채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은 배상 절차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금감원이 4월부터 분쟁조정위원회 개최와 판매사 제재 절차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불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자율배상을 결정한 우리은행은 4월 만기를 맞는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안내에 들어갔고, 하나은행은 이사회 개최 이틀 만에 첫 배상 사례를 내놨다.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자율배상을 결정한 하나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와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지원팀'을 신설해 손해배상 처리를 하고 있다. 자율배상위원회는 외부전문가 3명을 포함해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하나은행은 이사회 결정에 따라 28일 개최된 자율배상위원회에 상정된 개별 자율배상안을 심의·의결하고, 일부 투자자들과의 합의를 거쳐 29일 배상금 지급을 마무리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과 원만한 소통과 배상을 이뤄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자율배상위원회를 통해 투자자별 개별 요소와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금감원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공정한 배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가장 먼저 자율배상을 결정한 우리은행은 신탁부를 중심으로 소비자 보호와 관련 법령 등을 검토할 2~3명 규모의 조직을 구성해 자율배상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지난주부터 4월에 홍콩 ELS 만기를 앞둔 투자자들에게 자율배상 절차에 대해 안내를 시작했고, 투자 손실이 확정되는 대로 배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의 자율조정 대상 홍콩 ELS 금액은 415억원 수준으로 총 배상액은 10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를 대상으로 본격 조정 절차에 돌입한다"면서 "투자자와 협의를 마치면 일주일 이내로 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은행들도 내부 실무조직을 보강하는 한편, 자문과 검토를 담당할 외부 전문가 중심의 협의회를 구성해 자율 배상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지난 29일 오전 1시간이 넘는 임시이사회를 통해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늦게 금감원의 분쟁조정 기준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KB국민은행은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해 기존 고객보호 전담부서와 함께 투자자 배상 처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KB국민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판매 규모가 큰 만큼 200명이 넘는 직원을 투입해 전수조사를 벌여왔다.
신설되는 '자율조정협의회'에는 관련 법령과 소비자보호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외부 전문가 위원들은 투자자별 판매 과정상의 사실관계와 개별 요소를 면밀하게 파악해 배상금액 산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사례부터 순차적으로 신속한 배상 절차를 이행하고 투자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29일 이사회 결의를 토대로 소비자보호그룹 내에 금융상품, 소비자보호 정책·법령 등에 경험을 갖춘 외부 전문가 중심의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해 배상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이미 지난해 6월부터 홍콩ELS 관련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는 등 내부 조직을 갖춰왔고, 최근 이사회를 앞두고는 17명의 인원을 투입해 홍콩ELS 관련 배상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손실 고객에 대한 배상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검사 지적 사항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기업 시민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는 자율조정협의회 또는 위원회를 구성해 손실 고객을 대상으로 조정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이들 두 은행은 지난해 8~9월 홍콩ELS TF를 꾸리고 대규모 손실 사태에 대비해 왔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외부전문가를 포함한 자율조정협의회를 구성하고 감독 당국의 분쟁조정 가이드라인을 준용한 세부 조정방안을 수립하는 등 손실고객을 대상으로 조정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요 시중은행이 잇달아 자율 배상을 수용했지만 모든 투자자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이후 홍콩ELS 투자자들은 '피해자 모임' 등을 만들어 100% 배상을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지난달 29일에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 철회를 주장했다.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 모임 위원장은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배상안"이라며 "어떤 경우라도 은행이 책임을 50% 이상 지지 않게끔 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투자자가 자율조정안을 받아들이더라도 배상 비율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예상된다. 원금보장상픔 가입을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여부를 포함해 ELS 투자 경험 등 정성적 기준을 두고 접점을 찾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사인 은행과 다수의 투자자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여러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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