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인터뷰
산단 中企부터 '일·가정 양립' 뿌리내린다
기업문화도 바꾸자…"세제혜택까지 강구"
이정식 "노동개혁도 결국 저출산 해법"
“다음 달부터 대표 산업단지 두 곳을 시작으로 ‘맞춤형 대체인력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먼저 시범사업을 하고 내년에 전국 광역별 산단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22일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본청에서 만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오른쪽 눈이 붉게 충혈된 채로 “기업이 대체인력 서비스를 몰라서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타깃형·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도록 빡빡하게 전국 산업현장을 다니며 얻은 저출산 해법이다.
2022년 ‘모성보호활용에 대한 근로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근무 사용자 두 명 중 한 명(50.9%)은 ‘팀 또는 부서의 기존 인력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인력으로 업무를 대신한다는 답변은 12.4%에 불과했다. 결국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하면 동료가 피해를 보니 현실적으로 눈치가 보여 사용하기 어렵다. 기업이 대체인력을 적시에 충원할 수 있어야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본 이유다.
이 장관은 산단에서부터 일·가정 양립을 뿌리내리겠다고 공언했다. 국내 기업 10곳 중 8곳은 중소기업인데 산단에 특히 밀집해있다. 고용부는 남성 근로자 비중이 높고 제조업이 몰려있는 산단에 직접 뛰어들어서 일·가정 양립을 빠르게 확산시킨다는 복안이다. 올해 대체인력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대체인력 사용지원, 컨설팅 등 맞춤형 서비스 패키지를 제공한다.
또 올해부터는 기업이나 근로자가 대체인력 지원을 신청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안내하겠다는 게 이 장관의 구상이다. 이 장관은 “사업주의 신청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면서 “임신하거나 출산한 근로자가 생기면 정부가 먼저 대체인력을 알선하겠다”고 말했다. 제도를 몰라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업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이 장관은 이날 대담에서 고용부가 저출산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내내 강조했다. 이 장관은 역대 고용부 장관 중 처음으로 올해 신년사에서 저출산 해법을 언급한 인물이다. 지난 6일 3년 만에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시대적 과제로 ‘저출생’을 꼽기도 했다. 청년과 여성 고용정책도 저출산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통상 일자리, 안전, 근로시간, 임금 등이 주요 의제인 고용부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육아휴직 못 쓰는 中企 근로자들…“중기 맞춤형 대체인력제”
이 장관은 출산·육아를 위한 근로시간 지원정책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원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집중될 전망이다. 중소기업 소속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비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기업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는 1849만명으로 전체 81%다. 하지만 중소기업 육아휴직 수급자 수는 지난해 6만9000명으로 대기업 종사자 13만7000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장관은 “우선적으로 근로시간의 유연한 활용과 업무공백 부담을 덜어주는 데 방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중소기업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더 활성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일정 기간 업무에서 손을 떼는 육아휴직보다 일하면서 아이도 키울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고용부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요건을 8세(초등학교 2학년) 이하에서 12세(초등학교 6학년) 이하로 확대한다. 활용 기간도 부모 1인당 최대 24개월에서 36개월로 연장한다.
다만 ‘전반적인 근로시간이 줄어야 한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고용부에서는 지난해 3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주 69시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청년층을 중심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근로시간 정책이 역행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같은 해 11월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겠다’라는 대안을 내놨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경사노위 일·생활 균형위원회에서 포괄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라면서 “실근로시간 단축을 기초로 근로시간 유연화, 근로자 건강권 보호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바람직…취업규칙제도 바꿔야”
일각에선 최근 부상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대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가사노동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분리해서 봐야 한다”면서 “대안으로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지 불안해하는 국민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국민들이 많으니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늘어도) 육아와 직장생활의 충돌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장기적으로 근로기준법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근로시간과 같은 처우 문제는 취업규칙에 마련하고, 바꿀 때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사업장에서 청년층이나 임신·출산 근로자를 위해 과감한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기 어렵다. 이 장관은 “같은 사업장에서도 노동자들 간 직종과 나이가 다양하다”며 “(사업주들이) 모두를 아우르는 취업규칙보다 일부만 따로 규정하는 취업규칙을 원하더라”라고 전했다.
육아기 소득 보장예산은 파격적으로 확대했다고 자평했다. 이 장관은 “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육아에 필요한) 충분한 돈을 달라는 것”이라면서 “올해는 육아지원 예산을 역대 최대로 투입한다”고 말했다. 이어 “육아지원 예산의 상당부분을 일반회계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늘어나는 예산의 16%는 일반회계에서 부담할 정도로 정부는 강한 의지를 갖추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장관은 사업주를 위한 정책으로는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고 봤다. 가족친화경영을 목표로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실천하지 못하는 기업이 있어서다. 이 장관은 “현장에서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일·가정 양립 정책을 활용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고 얘기한다”며 “육아휴직, 재택근무, 선택근로를 하려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데 이때 정부가 지원을 좀 해달라는 호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연근무와 같은 가족친화경영 제도를 모든 기업에 적용하기 어렵다’라는 지적에는 한계를 인정했다. 규모가 아주 작거나 직원 숫자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지는 업종은 유연근로가 생산성의 감소로 이어져서다. 이 장관은 “기업별로 노사의 자율적 합의·선택에 따른 도입을 우선한다”면서도 “유연근무 경험이 없는 기업 400곳을 선정해 매년 컨설팅을 제공해 돕겠다”고 제안했다. 유연근무 인프라 지원기업도 50개에서 850개로, 지원금액은 7억원에서 27억원으로 상향한다.
“문화도 같이 바뀌어야, 세제 혜택까지 강구”
이 장관은 지원정책뿐 아니라 문화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일·육아를 병행할 시간과 소득의 보장도 중요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취지다. 본인이 생각하는 올해 고용부 슬로건 역시 ‘이제는 문화다’이다. 이 장관은 “지금은 식당에서 흡연하면 안 된다는 게 문화로 널리 퍼져있듯이 일·가정 양립이 우리 노동시장의 당연한 문화로 인식돼야 한다”면서 “성희롱·성추행·괴롭힘 문화를 없애는 것부터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직무 차별, 승진 배제와 같은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의 혜택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세제 인센티브도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기업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리더의 인식과 의지”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의 자율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 장려금, 정부 지원사업, 정책자금 지원 등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함께 강구하겠다”고 했다.
회사 대표뿐 아니라 근로자끼리 눈치를 보지 않는 환경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기업은 업무공백을 동료 근로자로 해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회사 동료의 업무가 늘어날까 봐 눈치가 보여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올 하반기 일종의 동료 응원 수당을 지급한다. 육아기 단축근로로 업무량이 늘어난 직원에게 사업주가 일정한 보상을 지급하면 정부가 월 20만원을 주는 식이다.
“노동개혁도 결국 저출산 해법…못하면 폐해”
이 장관은 고용부가 전통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들도 저출산 해법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바탕이 돼야만 근로자들이 출산과 육아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장관은 “고용부가 노동개혁을 시작하며 처음 한 게 노사법치”라면서 “좁게는 육아 지원이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지만, 성희롱·성차별을 없애고 임금체불을 막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저출산 정책”이라고 얘기했다.
이 장관이 인구문제 해법에 ‘이중구조 해소’를 꺼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장관은 “좋은 일자리란 오래 일 안 하고, 임금 잘 받고, 기본권 잘 보장해주는 곳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일자리 규모가 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의 고용은 중소기업에서 나오는데, 정작 이들 근로자는 노동조합과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풀어내 꽤 괜찮은 일자리들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만약 출산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면 ‘수축사회’에 직면해 경제가 쪼그라들 거라고 경고했다. 일자리 주무부처인 고용부가 저출산 문제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인구가 줄면서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050년까지 15%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이 장관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경제 전체의 투자 위축과 노동시장의 활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지방의 피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토대가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도 과도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장관은 “경쟁은 계층, 세대, 성별, 지역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의 이해 갈등과 대립으로 격화할 수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안정을 근저에서 위협하고 경제 전반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악순환의 기재로 작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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