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튼 스쿨의 마우로 기옌 교수는 ‘2030 축의 전환’이란 책에서 향후 10년간 세계의 중심축이 이동하는데 ‘고령자’는 특히 주목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60세 이상이 전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도 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젊은 노인의 시대가 도래했다(The decade of the ‘young old’ begins)”며, 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시니어 세대가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전세계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동향에 집중하며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지만, 실제로 인구층이 가장 두텁고 보유자산과 소비력이 있는 세대는 새로운 시니어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령자라고 하면 ‘연금 수입’이나 사회보장제도에만 의존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강하다. 힘든 생활을 하는 시니어도 있지만 풍요로운 시니어도 있다. 고령화에 따라 우리의 생애주기는 변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시니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20 시니어트렌드’란 책에는 흥미로운 일본 사례가 나온다.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돈부자, 시간부자, 돈과 시간부자, 여유없음’의 네 분류로 나눈 후 당신은 어디에 속하느냐고 질문한 조사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와 60대였다. 이에 대해 ‘그건 부유층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시니어 세대는 전반적으로 절대 빈곤층이 많지 않느냐’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이 조사를 실시한 연구소의 목적은 ‘부유층이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우리의 생애주기가 길어짐에 따라 세대별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살펴보려 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시니어 세대가 현역으로 뛰는 청년 세대와 어떻게 다른 인생 주기를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함이었다.
‘시간 사치’도 살펴보자. 시니어 세대는 일과 삶을 일체화하는 경향이 컸던 터라 과로도 잦고 가족과의 시간도 적었다. 성장기의 한국에서 청년 시기를 보낸 시니어들은 일에 쫓기며 ‘시간 가난뱅이’로 항상 바쁘게 뛰었다. ‘퇴직’으로 인해 여러 여건이 달라지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변화다. 평일, 비성수기에 활동하거나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은퇴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인생 최고의 사치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평일 대낮에 친구와 맥주로 건배’하며 유쾌한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종로 일대를 가보면 오후 3시부터 문을 여는 술집이 있고, 시니어들로 북적인다. 도장깨기하듯 전국의 유명 맛집이나 명산 코스를 섭렵한다거나 지역별 둘레길을 전부 다 찾아서 걷는 사람들 얘기도 들린다. 물론 변수는 있다. 간병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지, 본인이 건강한지 여부다.
‘돈 부자’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자녀의 학비나 생활비를 지원해야 한다거나 돌봄으로 목돈이 나가는 상황은 예외다. 일반적으로는 50대에 주거 대출 상환을 마치고, 60대에 정년을 맞이하면 ‘퇴직금’이 들어오고 연금이 개시돼 여유가 생기는 흐름이다. 이전 시니어 세대와 크게 달라진 부분은 ‘돈’에 대한 태도다. 기존의 시니어 세대는 ‘퇴직금=저금해서 묵혀 놓는 돈’ 혹은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돈’이라 잘 사용하지 않았다. ‘시니어=절약’이었다. 새로운 시니어는 ‘돈을 불리고자 하고, 나를 위해 소비’하고자 한다. 2022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뉴시니어가 원하는 금융’ 보고서를 발간했다. 의외로 모바일 기반 핀테크를 활용하는 데 개방적이고 새로운 금융트렌드에도 적극적이었다. ‘원금 보장’, ‘정기적 수익발생’과 ‘환금성’을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금융 상품에 친숙하고 투자마인드가 높았다. 저축한 노후 자금이나 퇴직금을 보유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유동자산이 풍부해, 작더라도 지속적으로 정기적인 수익을 내는 구조에 관심이 높았다. 부동산 임대, 절세형 엔젤투자, 배당형 주식 투자 등을 하고 있었다.
돈과 시간 부자라고 하더라도 시니어 세대는 오랫동안 경제활동과 소비활동을 해온 ‘경력자’이자 ‘소비 베테랑’이다. 돈을 물 쓰듯 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선택적’ 소비를 한다.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것, 원하는 것에만 돈을 쓴다. 상당히 고가로 보이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갑이 열린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고, 꿈꾸던 여행은 멀고 비싸더라도 간다. 고가의 크루즈 여행이나 고급 낚싯대나 고급 자전거를 구입한다. 각종 설문에 따르면, 시니어들이 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은 여행과 휴양이다. 그 다음으로 취미활동, 건강 챙김과 먹거리에 돈을 쓴다. 그 다음이 ‘저축, 자산 운용’이다.
여전히 시니어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는 부족한 편이다. 새로운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에 특화된 시장이 열릴 때를 맞이할 우리의 시니어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무능하고 궁핍한가, 유능하고 부유한가?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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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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