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범 신상공개위원회 개최가 26일로 결정되면서, 강력범죄자의 신상공개 확대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민권익위 설문조사에서 거의 100%에 가까운 응답자가 신상공개 확대를 지지했지만, 신상공개의 실효성과 적법성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여전하다.
◆국민 대다수 “신상공개 확대 필요”=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국민 74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6.3%가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 ‘피해자 보호 및 범죄 재발 방지’(41.8%)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현행법상 신상정보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공개할 수 있다. 피의자가 청소년이거나 영아살해죄 등은 특정강력범죄에 속하지 않아 신상공개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기 수원에서 영아를 살해한 모친도 이런 법적 허점 때문에 신상공개를 면했다.
또 응답자의 94.3%는 "아동성범죄, 묻지마 폭행, 중대범죄(마약·테러 등)를 신상정보 공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95.5%는 "범죄자 동의와 상관없이 최근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돼도 피의자가 거부하면 최근 사진을 공개할 수 없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이춘재처럼 30년 전 교복 입고 찍은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신상공개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좀 더 실효성 있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불붙이고…경찰도 공감= 앞서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인해 흉악범 신상공개 확대법이 발의되고, ‘정유정 살인사건’으로 머그샷(체포된 범인을 찍은 사진) 관련 법안 논의가 재촉발됐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나서 여성 상대 강력범죄 가해자에 대한 신상 공개 확대 방안을 추진할 것을 지시하면서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신상공개 확대 주장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예비 범죄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거나 재범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률상 신상공개의 요건으로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이 명시돼 있다”면서 “누구나 특정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만큼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이점만으로도 신상공개가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경찰도 신상공개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현재보다는 조금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부작용을 점검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율·재범률과 무관” 반대 목소리도= 신상공개 반대 목소리도 없지 않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객관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진행한 다수의 연구 결과는 신상공개와 범죄율 혹은 재범률 간에 아무 연관이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면서 “신상공개가 이뤄져도 두 가지 수치 모두 는다는 것이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강력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해야 하느냐, 그들을 엄벌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이런 여론 조사 자체가 불필요하고, 어떻게 보면 정답이 정해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설문조사처럼 보인다”고도 말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중형주의 형사제재의 실효성에 관한 평가연구’ 보고서도 신상공개에 대해 “불공평성·부당함과 낙인·수치심 주기와 같은 부적절한 특성이 대상자의 저항적 태도를 초래해 효과를 저해하거나 상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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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현재 성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위헌성을 따져보고 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가 텔레그램 ‘n번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산 피고인이 신상공개에 불복해 낸 소송 항소심을 심리하던 중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서다. 신상공개가 인격권·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에서다. 헌재가 이를 위헌으로 판단하면 신상공개 확대 논의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자나 일반 국민들의 복수 감정 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신상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면서 “어떻게 재범률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는지 인과성에 대한 조사가 선행된 다음에 신상공개 확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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