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헬스 산업이 차세대 국가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산업 성장이 이어지면서 실제 의료 현장에서 쌓은 기술력을 토대로 창업에 나서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창업에 나선 후에는 쓴맛을 보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에 "의대 교수들은 창업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고언(苦言)들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용감히 도전장을 던지는 이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고대구로병원에서 열린 '제 1회 고려대학교의료원 창업연구회'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토대로 의사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기조 강연에 나선 송해룡 한국의사창업연구회장(부천 뉴대성병원 의료원장)은 "의사 창업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고, 해외에서는 의사가 창업해 번 돈으로 언론사를 사는 사례도 생겼다"며 의사 창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화이자와 '코미나티'를 공동개발한 바이오엔텍을 2008년 공동 창업한 우구르 사힌·외즐렘 튀레지 부부는 대표적인 의사과학자로 꼽히고, 외과 의사 출신으로 바이오테크 기업 난트헬스를 설립한 패트릭 순-시옹은 2018년 미국 6대 일간지로 꼽히는 LA타임스를 전격 인수했다.
의사 과학자의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병원 차원의 지원과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송 회장은 "해외에서는 병원이 공동으로 출자회사를 만들어 투자하는가 하면 자체 액셀러레이터를 만든다"며 "우리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홍근 다솔벤처스 대표는 최근 많은 바이오테크들이 상장 전략으로 삼고 있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제도에 대한 강연을 통해 무엇보다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를 잘 보여주기 위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윤 대표는 "상장 단계에서 주로 질문을 받게 되는 지점이 '어디에 팔 수 있느냐'다"며 "특례상장은 재무적 외형을 안 보겠다는 것일뿐 나머지는 일반 상장과 같은 만큼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기술특례인만큼 경쟁 우위와 함께 성공 가능성도 높은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구사해야 상장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상장의 방향을 잘 정하고 회사가 어느 단계인지 진단을 받는 게 필요하다"며 "기술성 평가 이전에 예비 기술성 평가를 통해 미리 진단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며 상장 과정에서는 투철한 객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어서 실제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에 나선 사례 발표도 이어졌다. 송재준 뉴라이브 대표(고대구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명 등 퇴행성 뇌질환을 타깃으로 미주신경을 비침습적으로 자극하는 전자약 '소리클'을 필두로 웰니스 기기 '힐라온', 디지털 치료기기(DTx) '소리클리어' 등을 개발하고 있다. 모두 일부 상용화가 이뤄졌거나 사람 대상 임상을 진행하는 등 개발이 궤도에 오른 상태다.
소리클은 임상을 진행 중으로 연내 품목허가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송 대표는 "연구에서 기존의 다른 직접적인 자극을 하는 의료기기보다 뇌 자극 효과가 우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비침습적인 웨어러블 기기여서 환자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미주신경을 자극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이고 집중력은 향상하는 웰니스 기기 힐라온은 기업·정부거래(B2G)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DTx 소리클리어도 개발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한 상태다. 이명에 대한 인지행동치료(CBT)를 디지털화한 것인만큼 맞춤형 소리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해 현재도 CBT의 소리치료 보조용으로 쓰이면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어 송 교수는 "창업을 위해서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점을 힘줘 말했다. 그는 "창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전혀 관계가 없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면서 하는 일"이라며 "이외에도 매순간 새로운 분야에 대해 몰입해야 하는 등 다양한 역량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고 조언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신재용 에버트라이 대표(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정부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등 새로운 의료 기술에 대한 적극적 지원에 나서면서 다양한 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신 교수는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 제도를 들었다. 기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등에서 별도로 진행되던 혁신의료기기 관련 심사·평가를 모두 통합해 제품 출시에 걸리는 기간을 대폭 줄여준 제도다. 지난해 12월 에임메드와 웰트의 불면증 치료 DTx, 제이엘케이의 뇌영상검출·진단 소프트웨어가 처음으로 이 제도의 수혜를 받은 이후 총 6개 제품이 통합 심사·평가 제도를 통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됐다. 신 교수는 "기간보다 중요한 건 평가의 체계가 바뀐 것"이라며 "이전에는 심사 과정에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떨어트리는 체계였다면 이제는 통합심사를 우선 내주고 조건부로 결과를 다시 도출해 가져오라는 게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결국 성공적 의사 창업을 위해서는 의료가 규제산업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신중한 경로를 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 일반 소비자들은 건강 관리에 큰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환자를 관리할 것인지, 환자의 생활을 관리할 것인지 등 명확한 타겟팅 속에서 정부의 다양한 지원 속에서 실증사업을 확실히 밟아나가야만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