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칩 통해 단번에 경쟁사와 차별화에 성공
박태환 헤드폰도 애플 반도체 통해 업그레이드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통합을 추진했다. 자체적인 운영체제(OS)를 확보한 후 반도체 확보에 나섰다. 컴퓨터(맥OS), 스마트폰(iOS) 두가지 운영체제를 확보한 후 외부에 의존했던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기에 나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애플의 반도체는 전량 애플이 생산한 제품에 사용된다. 애플 외에는 애플의 반도체를 쓸 수 없다는 뜻이다. 통상 대부분의 반도체는 범용이다. 특정 브랜드 제품만을 위해 설계하는 경우는 드물다. 애플은 이런 관념을 무너뜨렸다. 운영체제가 필요한 기기에만 애플 실리콘이 사용될까. 아니다. 애플은 반도체를 자사의 제품들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지금 애플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 애플 반도체를 접하고 있다는 뜻이다.
애플 실리콘 사용한 박태환 헤드폰도 달라졌다지난해 출시된 애플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프로2의 공식 판매 가격은 35만8000원이다. '헉' 소리가 날 만큼 비싸다. 저가 스마트폰을 살 수도 있는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 2016년 첫 출시한 에어팟도 미국 기준으로 150달러나 했다. 에어팟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진두지휘한 제품이다. 팀 쿡은 에어팟에 애플이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적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콩나물 디자인이라는 비판을 받던 에어팟은 어느새 애플의 효자로 부상했다.
'수백달러짜리 머리띠' 조롱받던 박태환 헤드폰도 변신시킨 '마법'
쿡이 아이폰7과 함께 선인 에어팟은 유선 이어폰 '이어팟'에서 애플의 상징과도 같던 '줄'(wire)을 없앴다. 스티브 잡스는 MP3플레이어 아이팟용 이어폰에 흰색 줄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이어폰이 검은색이던 시절, 흰색의 이어폰 줄은 '나는 아이팟 사용자'임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다. 애플은 흰색 이어폰을 사용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쿡은 이 줄을 아예 없애버렸다. 디자인은 또 어떤가. '머리를 흔들면 떨어질 것 같다' '콩나물이다'라는 비아냥이 줄을 이었다.
에어팟을 향한 쿡의 자신감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W'칩이다. 애플은 W칩을 통해 단번에 경쟁사와의 차별에 성공했다. 무선이어폰은 편리하지만 사용하기 까다롭다는 관념을 무너뜨린 결과였다.
W1은 아이폰과 에어팟을 연동해주는 일종의 '메신저'였다. W1이 에어팟과 아이폰을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으며 에어팟의 성공비결인 '미친듯한 연결성'이 가능해졌다. 기존 무선이어폰들이 '블루투스'라는 무선 기술을 수동적으로 이용했다면 에어팟은 달랐다. W1을 사용한 에어팟을 아이폰 옆에 가져가면 자동으로 연동이 됐다. 어린아이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복잡한 블루투스 연동 과정이 사라진 것이다.
애플 실리콘 반도체가 완제품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한 사례도 있다. 애플이 인수한 무선헤드폰 브랜드 '비츠'다. 비츠 헤드폰은 수영 스타 박태환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박태환 외에 국내외 유명스타들도 비츠의 헤드폰, 이어폰을 사용했다.
'힙합 스타' 닥터 드레가 관여한 비츠의 인기 비결은 눈에 띄는 디자인이었다. 성능은 '그닥'이었지만 디자인 하나로 '잇템'으로 부상했다. 그러다 보니 유명세와 달리 비츠 무선 이어폰은 '돈 값'을 하지 못한다는 혹평을 받았다. '수백달러짜리 머리띠'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쿡은 이런 비츠를 지난 2014년 30억달러(약 4조원)을 들여 인수했다. 쿡은 3년 후 비츠에 애플 실리콘을 이식했다. 애플은 비츠에도 에어팟과 동일한 W1칩을 심어줬다.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마치 '아이언맨'이 '아크 원자로'를 심장으로 받아들이며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 모습을 연상시킨다.
기존 '비츠 스튜디오2'에 비해 애플 실리콘 심장을 단 '스튜디오3'는 자동차 엔진이 바뀐 수준의 비약적인 성능 개선이 이뤄졌다. 풀체인지같은 페이스리프트였다. 스튜디오2가 주변 잡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작동시 12시간 동안 충전없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스튜디오3는 22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 해제시 사용 시간은 최대 40시간이었다. 충전도 개선돼 10분 충전시 3시간, 15분 충전시 5시간 동안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폰과의 연동도 간단해졌다.
애플에 인수되기 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들도 사용하던 비츠는 반도체를 통해 애플 생태계에 동참했다. 애플은 모든 비츠 이어폰에 애플 실리콘을 넣지 않았다. 애플 실리콘을 사용하지 않은 비츠 이어폰은 저가다. 아이폰과의 자동 연결 기능이 없다. 애플의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칩을 사용한 결과다. W칩은 이후 W2, W3로 발전하며 귀에서 손목을 위한 반도체로 변화했다. 애플워치가 W2, W3를 사용한다.
애플은 H칩으로 귀에 사용하는 반도체를 업그레이드 했다. H는 W와는 차원이 다른 성능으로 무장했다. H1칩은 아이폰4와 같은 성능을 가졌다는 게 애플의 설명이다. 2010년 판매된 아이폰4의 칩 'A4'의 성능이 이어폰에 사용된 것이다. 지난해 선보인 'H2'는 더 놀랍다. H2는 초당 4만8000회의 연산을 한다. 이는 아이폰에 사용된 A9, A10 칩 수준이다. 애플은 2016년까지 아이폰에 사용되던 성능을 이어폰에 허용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쿡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에어팟에 고성능 반도체가 사용되는 이유로 꼽힌다.
H2를 사용한 에어팟프로2의 특징은 주변음 허용이다. 주변음 허용 기능은 MZ세대들이 업무 중에도 에어팟프로2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H2는 주변음을 확인해 귀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소음도 자동으로 걸러준다. 그러면서도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주변인과 대화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소리는 고막으로 전달해 준다.
아이폰과 연동하며 H2의 증폭기능이 대화만 더 큰 소리로 들려준다. 디지털 보청기의 역할이다. 쿡은 건강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영자다. 그는 조니 아이브가 패션 기능으로 출발시킨 애플 워치를 건강을 위한 도구로 업그레이드 해 큰 성공을 거뒀다. H2칩을 통해 쿡의 의도는 보다 명확해 진다.
회의시 마스크를 쓴 상대방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에어팟프로2의 증폭모드를 사용해보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이는 에어팟보다 훨씬 고가인 디지털 보청기 시장이 애플의 다음 목표임을 예감케한다.
이미 애플은 이런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에어팟이 내년, 늦어도 2년 청력을 지원하기 위한 기기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만 얻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하드웨어 관련 준비는 H2를 통해 마련해 놨다. 애플이 에어팟에 심어둔 반도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해킹, 애플 실리콘을 당황시키다다른 기업들도 뛰어난 반도체를 사용한 이어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애플과의 격차가 발생한다. 애플은 자체 생산한 반도체를 자사 제품에만 사용한다.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해 적용해도 막대한 판매량은 부담을 덜어준다. 경쟁사는 이어폰을 위해 전용 반도체를 제작하기 어렵다. 시도 조차 어렵다. 다른 칩을 사오려 해도 입맛에 딱 떨어지는 반도체를 구하기 어렵다. 범용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를 구했다고 해도 소프트웨어와 결합하기 위한 노력이 결부돼야 한다. 이런 격차가 애플 에어팟과 다른 이어폰을 차별화하는 부분이다.
반도체 해킹하니 짝퉁 에어팟 등장
빈틈도 발생했다. '차이팟 ''짭팟'. 소비자들은 4만~5만원이면 살 수 있는 에어팟의 '짝퉁'을 이렇게 부른다. 차이팟은 포장, 제품 모양 모두 에어팟과 차이를 찾기 어렵다. 에어팟처럼 아이폰과 연동시킬 수 있다. 포장이나 디자인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애플의 제품과 같은 연동성을 보인다는 것은 흉내내기 어려운 일이다. 이유는? W1칩을 해킹한 반도체를 사용한 탓이다. 애플의 반도체를 사용하면 비슷한 성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짝퉁 에어팟을 통해 확인됐다. 그나마 W1 칩의 경우 낮은 수준의 반도체 기술을 사용한 탓에 복제가 가능했지만 최신 A, M 시리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애플은 대만 TSMC의 최신 3나노 공정 전체를 예약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이 공정을 통하지 않는다면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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