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연세대 교수와 연희동 탐방
조용하고 오래된 주택가에서 유명 카페·맛집 몰린 핫플레이스로
언덕 없는 넓은 평지…연남·합정·망원 등으로 걸어서 이동 가능
전국 골목 상권 5년 사이 80개→200여개로 증가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길.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62)에게 평소 자주 걷는 골목길에서 만나자고 하자 곧바로 "정음철물 앞에서 기다리라"는 답이 왔다. 대로변에 위치한 이 동네 상징 '사러가쇼핑센터'를 지나 몇 걸음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철물점이다. 1990년대 초까지 정음전자라는 전파상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열다섯평 남짓한 철물 편집숍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축 및 인테리어와 관련된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과 자재, 전기나 공구제품 등을 전시·판매하고 있지만, 밖에서 보면 마치 연희동 골목길 투어를 시작하는 출발점이자 안내소처럼 자리하고 있다.
연희동에 살고 있는 모 교수는 시간이 날 때면 이렇게 집 근처 골목길 구석구석을 산책하듯 걷는다고 했다. 기자와 만난 이날은 연희동 한가운데를 가르는 연희로의 서쪽, 연희로11길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택했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주택가였던 연희동은 이제 골목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베이커리 브랜드들이 매장을 내 이미 핫플레이스를 형성하고 있었다. 모 교수는 골목 사이사이 자리한 숨은 맛집부터 '폴앤폴리나', '뱅센느' 등 유명 베이커리 카페까지 메뉴와 매장 인테리어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주로 어떤 손님들이 찾는지를 모두 꿰뚫고 있었다. 일반 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옷가게나 가구 편집숍부터 뜨개질과 같은 취미용품을 구경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까지 단순히 음식을 먹고 마시거나 물건을 사는 공간을 넘어 취미생활이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상점도 곳곳에 있다.
모 교수는 "이렇게 골목길을 걸으면 운동만 되는 게 아니라 골목 양쪽으로 구경할 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지난주엔 없었던 가게가 일주일 새 새로 들어온 것을 보면 이를 발견하는 재미랄까, 늘 변화하기 때문에 똑같은 길을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오래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지난 2021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일 당시 연희동을 찾았을 때도, 모 교수는 단순히 맛집이나 핫플레이스가 아닌 지역산업의 새로운 생태계로서 골목상권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로컬 비즈니스의 성공 요소로 문화 자원과 안정적인 임대료, 기업가 정신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화 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된 지역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전국적으로 골목 문화가 확산 중인데, 서울의 경우 한강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강남이, 북쪽으로는 홍대가 각각 강남문화, 홍대 문화를 형성하며 경쟁하고 있다"며 "흔히 신도시 아파트단지에 학원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번화가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연희동이 걷기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평지라는 점이다. 서울시내에서 동네 문화를 가진 주택·주거지역 가운데는 성북동이나 평창동, 한남동처럼 대부분 언덕이 심한 고립된 구조다. 연희동처럼 굉장히 넓은 평지에 일반 상권과 통합된 단독주택 지역은 드물다. 모 교수는 평소 이 연희동에서 시작해 동교로를 따라 연남동 굴다리, 망원동으로 이어지는 약 4㎞, 왕복 8㎞ 거리를 이렇게 구경하듯 걸으면서 인근 신촌에서부터 홍대, 합정, 연남 등으로 이어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특색이 있는 상권들이 어떻게 저마다의 정체성을 갖고 변화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과거 아파트 선호 현상과 함께 한때 다소 침체한 듯했던 연희동의 경우 2010년 이후 다시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주택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자 '쿠움파트너스'라는 전문적인 부동산 개발·임대회사가 상권 개발에 가세했다. 기존 주택을 상가로 리모델링하고 이곳에 유명 샵들을 직접 유치했다. 모 교수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어떤 가게를 옮겨올지까지 고려해 건물 자체를 기획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임대료가 안정되고 공실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수년간 전국의 골목 상권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있는 모 교수에게 연구는 곧 두 발로 걷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국 새로운 상권을 찾아 현장 탐방에 나서는데, 일행과 약속한 시간보다 한두시간은 먼저 도착해 주변 지역을 직접 돌아보고 눈으로 확인하곤 한다. 2017년 그가 저서 '골목길 자본론'을 내놓았을 때 서울에 30개, 전국적으로 50개 수준이었던 골목 상권은 2021년 160개에서 현재는 200여개까지 불어났다. 모 교수는 "아직 골목 상권 현황을 파악하는 체계적인 통계가 없기 때문에 저만의 기준에 따라 이곳이 골목 상권이냐 아니냐를 파악하고 있다"며 "커피전문점과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베이커리 등 핵심 업종이 있고 골목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소상공인, 풍부한 문화자원이 있을 때 향후 발전 가능성이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상권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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