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관리자, 서류 작성에 현장 둘러보지 못해
100대 건설사 작년 3분기 건설사고 33%↑
[아시아경제 차완용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1년이 다가오지만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산업계의 혼란은 여전하다. 실제 현장소장 등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져야 하는 담당자들에게 작년은 한 마디로 ‘끔찍한 시기’였다. 사고 발생 시 사주 및 대표이사 처벌까지 이어지니 상부에서 내려오는 압박의 수위가 상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한 현장소장은 ‘쿵’ 소리만 들려도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어느샌가 건설업종에서 현장 관리직은 기피하는 자리가 됐다.
지난해 11월 말 정부가 중대재해 발생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처벌 위주의 규제를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하고 중처법 개정을 2024년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나온다. 중처법 자체에 대한 합리적 개선 없이 자기 규율 예방체계까지 도입되면 ‘옥상옥’ 규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업계는 중처법 개정이 당장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사현장은 수백 수천 명의 인력이 투입되는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개별현장의 안전을 직접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관리자들의 업무 부실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까지 이어지는 처벌 강화로 인해 현장 담당자들의 본사 보고용 서류작성 업무 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안전 관리를 위해 현장을 돌아다닐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한 건설사 현장관리 담당자는 "경영자 처벌이 초점이다 보니 본사의 압박이 상당하다"며 "사전 조치를 취했다는 안전 관련 증빙서류를 작성하느라 오히려 현장을 둘러보질 못한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행정이나 법상으로 안전에 대해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현장의 실정이 다르다"며 "작년 한 해 동안 중처법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가 줄지 않았다는 것은 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장과 현실에 맞는 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건설업계에서는 중처법이 시행된 지난해 사고 예방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작년 11월까지 중처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인 제조업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인 건설업 사업장에서 사고로 모두 236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업종이 건설업으로 105명이나 됐다. 이는 2021년 같은 기간(101명)보다 4명 늘어난 것이다. 특히 안전관리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쓸 것으로 기대된 대형업체에서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국토교통부가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 통계를 분석한 결과, 작년 3분기(7~9월)에 건설사고로 사망한 근로자는 61명 가운데 상위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18명이 발생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100대 건설사 사망 근로자 12명에서 33% 늘어난 수치다.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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