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첫차인생]①강남을 깨우는 6411번 '이웃사촌'

시계아이콘02분 51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뉴스듣기

구로에서 강남까지, 새벽첫차 두 대 동시 출발
6411번 승객, 강남빌딩 새벽을 밝히는 그들

편집자주매일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삶의 이야기를 열어가는 사람이 있다. 아직은 많은 이가 잠들어 있는 시간, 첫차를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다. 새벽 버스의 온기를 채워가는 사람, 수많은 물품을 전달하느라 분주한 새벽 배송 기사 그리고 인생의 밑그림을 이제 막 그리기 시작한 노량진의 청춘들. 저마다 삶의 이야기는 다르고, 가려는 길도 차이가 있지만 고단한 삶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3년에도 힘차게 '첫차인생'을 열어갈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건물 청소하는 분들이 주로 새벽 첫차를 타시는데, 타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2대가 함께 출발한다."


지난달 27일 오전 3시40분.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6411번 버스 차고지는 첫차 운행 준비에 한창이다. 버스 기사 김우석씨(63)와 김정호씨(54)는 이날 첫차 버스 담당이다. 차고지 사무실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운행 준비에 나섰다. 버스 기사는 운행 전에 음주운전 측정을 하고, 이상이 없어야 운행이 가능하다. 승객 편의를 위한 돈통 준비도 기본 중 기본이다.


새벽 첫 버스는 한 대가 운행할 것 같지만 6411번 버스는 두 대가 동시에 운행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해 강남구 개포동까지 왕복하는 6411번은 서울을 운행하는 수많은 버스 중 하나가 아니다. 영화로도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 버스다.


그 사연은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2012년 당 대표 수락 연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이다."

[첫차인생]①강남을 깨우는 6411번 '이웃사촌' 2022년 12월 27일 오전 3시40분께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차고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
AD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6411번 승객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 정치인 노회찬의 자성은 우리 정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묻고 있다. 그렇게 6411번 버스는 서민 삶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버스 운전 경력 12년의 김우석씨는 이곳에서 일한 지 3년이 됐다고 한다. 매일 구로와 강남을 오가며 건물 청소하는 분들을 태워 목적지에 당도하게 하는 게 그의 일과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아침 7~8시가 가장 바쁜 출근 시간이겠지만, 멀리 떨어진 강남 빌딩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6411번 버스는 새벽 4~5시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버스가 첫 번째 정류장에 도착하자 3~4명의 승객이 올라탔다. 강남에서 청소 일을 하는 방모씨(69)는 일부러 2~3정거장을 걸어와 노선의 시작 지점에서 버스를 탄다. 방씨는 "1시간 정도 서서 가는 게 힘들어서 차고지 정류장까지 걸어온다"면서 "처음엔 새벽길 걷는 게 무서웠는데 적응되니 할만하다"고 말했다.


[첫차인생]①강남을 깨우는 6411번 '이웃사촌' 2022년 12월 27일 오전 3시40분께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차고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날 새벽 기온 영하 4도를 기록했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

방씨가 매일 새벽 버스를 타는 이유는 소박했다. "내 용돈 내가 벌어 쓰고, 손주들 용돈 주고…나는 그게 좋아." 그의 웃음은 새벽 생활의 고단함을 잊게 했다. 6411번 버스 승객들은 매일 같은 시간 승차해서 비슷한 공간(강남 일대)에 내리기 때문에 버스가 맺어준 이웃사촌이다.


굳이 하는 일과 목적지를 묻지 않아도 눈빛과 눈빛으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한다. 매일 만나던 버스의 이웃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을 때는 혹시 건강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해주는 관계. 팍팍한 서울 인심을 고려할 때 타인에 관한 그러한 관심은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그렇게 아직은 이 사회가 살아갈 만한 공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새벽을 열어간다.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나 승객이나 새벽 생활은 삶의 일부가 돼 버렸다. 김우석씨는 "(새벽 버스를 몰기 위해) 출근하려면 3시에는 나와야 한다. 요즘은 날씨도 쌀쌀해서 새벽 출근이 힘들긴 하지만 본업이니까 괜찮다(웃음)"고 말했다.


방씨도 "별로 힘들지 않다.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전했다. 20년 넘게 6411번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는 이기술(68)씨 역시 "습관이 돼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첫차인생]①강남을 깨우는 6411번 '이웃사촌' 2022년 12월 27일 새벽 5시30분께 도곡동에 있는 한 회사에서 청소 노동을 하는 최모씨(64)가 출근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

6411번 버스 승객들이 남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건물 청소를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화장실과 사무실, 엘리베이터와 복도 등 회사 곳곳의 청결을 유지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강남구 도곡동의 한 회사에서 청소 일을 하는 최모씨(64)는 "청소라는 게 열심히 해도 티가 잘 안 나는데, 안 하면 확 티가 난다"고 말했다.


방씨는 오전 5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방씨는 "직원들도 내가 청소하면 불편해하고, 나도 직원들이 있으면 일하기 쉽지 않아서 일찍 출근해 일한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가 업무 시간이다. 최씨는 6411번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지난 후에 하차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최씨는 가장 먼저 13층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청소용 쓰레기통으로 쓰는 파란 고무통을 챙겨 각 칸의 휴지통을 비우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최씨가 맡은 청소 구역은 13층 전체와 10층 남녀 화장실이다.


[첫차인생]①강남을 깨우는 6411번 '이웃사촌' 2022년 12월 27일 새벽 5시40분께 청소 노동자 최씨가(58)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

최씨는 "정확한 평수는 모르지만 한 100평 정도 되는 것 같다"면서 "재택이나 휴가 중인 직원들 제외하면 매일 출근하는 직원은 50여명 정도 된다"고 전했다.


일하는 손이 둔해질까 최씨는 맨손으로 먼지를 닦았다. 음료와 음식물쓰레기가 뒤섞인 쓰레기에서는 악취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최씨는 쓸고, 닦고, 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했다.


13층에서 개수대 3곳, 화장실이 딸린 사장실 2곳을 청소하고 70개가 넘는 직원들의 개인 휴지통을 비웠다. 13층과 10층의 남녀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를 일일이 손걸레로 닦고, 대걸레로 바닥을 청소했다. 어지럽게 놓여 있던 휴지통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사무실도 말끔하게 치워졌다.


최씨의 아침 업무는 7시40분께 마무리됐다. 청소를 마치자 사무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을 시작했다. 최씨가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해 휴게실로 돌아왔을 때에서야 창문 너머로 아침 햇빛이 드리웠다. 서민들의 새해 소망은 언제나 그렇듯 건강이다. 최씨의 새해 소망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없다. 자식과 손주들이 건강한 것, 그것 하나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