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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지옥 해방일지]③출근시간만 100분…"환승구간 병목현상은 일상"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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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시-서울 마포구 출근길 동행해보니
1시간41분 소요…예상시간보다 21분 더 걸려
광역버스 선망 대상…셔틀버스 추진했지만 무산
환승구간에서는 사람 쏟아지며 병목현상 생기기도
"경기 남부권-서울 강북권 대중교통 만들어졌으면"

편집자주'통근지옥 해방일지'의 첫 기사는 수도권에서 서울로 통근·통학을 위해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취재원들의 통근·통학길을 동행하면서 '통근지옥'의 현실을 짚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만, 취재원의 자택, 직장, 학교 뿐만 아니라 개인사까지 기사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사생활 노출을 우려하는 취재원의 의사를 존중해 부득이하게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보도하게 됐습니다.

[통근지옥 해방일지]③출근시간만 100분…"환승구간 병목현상은 일상" 9월16일. 경기 시흥시에서 서울 마포구까지 출퇴근하는 박현수씨(가명·37)의 출근길을 동행했다. 박씨는 오전 7시37분에 출발해 9시18분이 돼서야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은 오전 8시16분께 환승구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면서 병목현상으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박씨/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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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지난 9월16일 오전 7시37분. 경기 시흥시 장현동에서 서울 마포구 아현동까지 출퇴근하는 박현수씨(가명·37)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났다. 박씨는 "저보다 더 멀리서 오는 분들도 많은데 제가 나서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네이버 지도 상으로 예상시간을 찍어보니 ‘1시간20분’이 나왔다. 그러나 이건 ‘지하철이 들어오는 시간을 잘 맞춰 한 번의 지체없이 도착했을 때’라는 가정이 붙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이날 걸린 출근길 시간은 1시간 41분이었다.


박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려 나가던 그는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자 내집 마련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서울에 분양 물량이 많지 않아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도 그 상황에서 시흥 장현지구 청약에 성공했다. 다만 가족들과 살 집을 마련한 대신 출퇴근의 여유는 사라졌다. 그는 "서울에 살 당시에도 출퇴근 시간이 4~50분이 걸려 길다고 느꼈지만, 이제와서 보니 그 시간이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느낀다"고 했다.


박씨의 하루는 걷기운동으로 시작된다. 단지에서 역까지는 도보로 16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씨는 출근길 전체 코스 중에서 가장 좋은 코스라고 했다. 지하철에서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시흥시에 살고 있는 박씨는 여름 출근길도 한 번 겪었다. 살 빼는 기분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걷긴 했지만 갈아입을 옷을 들고다녀야 하는 수고로움을 견뎌냈다고 한다.


[통근지옥 해방일지]③출근시간만 100분…"환승구간 병목현상은 일상" 오진 7시53분. 지하철 도착 예정 시간이 가까워지자 박씨가 시흥시청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빨간 버스’는 박씨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강남권으로 가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박씨는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강북권까지 단번에 갈 수 있는 버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출근길을 편하게 가기 위해 시흥 장현지구에서 서울 서북권(영등포, 여의도, 공덕, 광화문 등)으로 출근하는 인근 주민들을 모아 셔틀버스를 만들어볼 생각도 했다. 최소인원을 금방 채우고 결제까지 마치면서 이대로 추진되나 싶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사 배정이 꽤 오래 연기됐고 주민들의 등록 포기까지 나오면서 이는 좌절됐다.


"오 세이프!" 시흥시청역 플랫폼에 도착하자 7시55분이었다. 하마터면 눈앞에서 지하철 하나를 보낼 뻔 했지만 역이 가까워지자 내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뛰다 보니 운좋게도 오자마자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이전 역부터 많은 사람들을 태워온 서해선은 시민들이 좌석 수 만큼 서있었다. 박씨도 좌석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이제 시작"이라며 "그래도 서해선이 가장 쾌적하다"고 했다. 이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저 곳"이라며 지하철 문 옆 기댈 수 있는 봉을 가리켰다. 그렇게 시흥시청역에서 1호선 환승이 가능한 소사역까지 16분이 걸렸다.


[통근지옥 해방일지]③출근시간만 100분…"환승구간 병목현상은 일상" 오전 8시17분. 서해선-1호선 환승역인 소사역에서는 출근길 쏟아진 시민들로 병목현상이 나타났다. 승강장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줄어들면서 환승게이트에서도 대기줄이 길어졌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소사역에 내리자 인산인해의 광경이 펼쳐졌다. 고속도로에서만 보던 병목현상이 지하철에서 일어난 것이다. 서해선에서 환승하는 시민들이 한꺼번에 내리면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씨도 반걸음씩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고비가 더 있었다. 승강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에스컬레이터 하나로 줄면서 이 곳에서도 사람으로 막혔다. 1호선 승강장까지 가는 데 8분이 소요됐다. 차량이 이미 하나 지나갔는지 배차간격은 길게만 느껴졌다. 기다리는 동안 또 도착한 서해선에 줄은 다시 길어져 어느새 세 줄이 됐다.


8시32분이 되자 1호선이 소사역에 들어왔다. 박씨는 "문쪽에 서있으면 신도림역에서 (인파에 밀려) 떠내려 간다"며 "좌석쪽으로 서는게 낫다"고 팁을 가르쳐줬다. 사람들의 가용범위가 크지않다 보니 지하철이 조금만 휘청거려도 사람들은 "죄송하다"고 옆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박씨의 눈 앞에서 자리가 났지만 순식간에 그곳을 다른 사람이 채웠다. 박씨는 "운 좋게 앉으면 그날 하루 운 다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근지옥 해방일지]③출근시간만 100분…"환승구간 병목현상은 일상" 오전 8시42분. 출근길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역을 지날수록 탑승객이 많아지면서 1인 가용범위가 점점 줄어들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오늘 운 다 썼네요." 운 좋게도 한 자리가 또 나면서 박씨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금방 일어서야 했다. 5호선으로 환승하는 신길역에 금방 도착했기 때문이다. 전체 통근 시간 동안 그가 앉아서 간 시간은 단 7분이었다. 그는 "오전 일정 중 가장 힘든 게 출근이다"며 "점심에 좀 쉬고 나야 집중해서 업무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사하고 난 후 업무에 지장이 많이 가긴 한다"고 덧붙였다. 신길역에 내릴 때 시간은 8시57분. 네이버 지도 상 예상 시간이었던 1시간20분은 이미 넘을 것이 뻔해보였다.


신길역 5호선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이 도착해 박씨는 "와~오!" 한시름 놓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그는 "애오개역이 보이면 하루 중 가장 큰 일을 한 거다"라고 했다. 서해선과 1호선보다는 널널한 편이었지만 앉아서 가긴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박씨가 말했던 서서 가기 좋은 자리, 입구 앞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한 청년은 떨어뜨린 휴대폰을 황급히 주웠다. 9시14분이 돼서야 애오개역에 도착했다.


[통근지옥 해방일지]③출근시간만 100분…"환승구간 병목현상은 일상" 오전 9시14분이 돼서야 박씨는 직장 근처인 애오개역에 도착했다. 박씨는 출근시간이 임박해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9시18분. 회사에 도착한 그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곧장 출근해야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경기 남부권에서 강북권으로 출퇴근 하는 이들을 위한 대중교통도 마련됐으면 한다"며 "지자체에서 이를 해소할 의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임금노동은 지금부터 시작되겠지만 육체 노동은 사실상 1시간41분 전부터 시작된 셈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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