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 원론적 방향제시에서
'투자경영' CEO 구체적 행동으로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 같습니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국민의 성원으로 성장한 삼성은 지금 같은 때에 마땅히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해야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18일, 지난달 27일, 2020년 2월26일에 각각 남긴 메시지다. '기술·투자·상생' 세 가지 경영 키워드가 담겨 있다. 가석방 신분으로 유럽 출장을 마친 뒤 귀국길에, 사실상 그룹의 리더인데도 10년 가까이 부회장에 머무르다 회장으로 승진한 직후에, 코로나19 팬데믹 초 사망자가 속출하던 국가 위기에 이같이 발언한 것. 이 회장 개인과 삼성그룹, 나아가 국가가 위기에 처한 극한 상황마다 한결같이 '기술·투자·상생'을 강조해온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 참석, 사이버보안 부문 수상자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였던 2006년부터 눈에 띄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2006년 일본 출장 후 기술 책임자에게 "한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발전한 나라고, 삼성도 제조업을 통해 성장한 회사다. 삼성이 앞장서서 우수 기술 인력이 우대받고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기업도 성장하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룹의 정체성을 '기술 제조업체'로 규정해 주목받았다.
16년이 흐른 지난달 28일 회장이 된 뒤 처음으로 광주 협력회사 디케이(DK)를 찾으면서 그는 '언행일치'를 실천한다. 규격이 같은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틀(frame)'인 정밀 프레스금형을 만드는 업체를 찾았다. 이런 행보는 이 회장이 과거 금형 엔지니어에 대해 '한국과 삼성의 구세주'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캐나다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 현장에서 이 회장은 "금형, 사출, 선반 등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챙겨보려고 (삼성이) 기술 인력 후원을 시작한 것"이라며 "이는 회사가 잘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사회에 나올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상무 때부터 '기술·상생'을 강조했다면, 최근엔 부쩍 '투자' 관련 발언이 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기술'을 강조하는 건 원론적인 '방향성 제시'로, 투자를 집행하는 일은 최고경영자(CEO)로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회장이 투자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2019년은 삼성그룹 창립 50주년이자, 삼성이 '초격차' 지위를 유지하던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시스템 반도체 1등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 도전을 할 것이라 선언한 해다. 2019년 6월 이 회장은 "지난 50년간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어려운 시기에도 중단하지 않았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고 발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지난 6월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왼쪽),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와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삼성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이 회장의 투자 관련 발언 수위는 높아졌다. 지난 5월24일 삼성이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히면서 "숫자는 모르겠고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쓴 게 대표적이다. 지난 8월19일 '광복절 특별사면' 후 기흥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을 찾아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나가자"고 한 부분도 주목된다. '기술 투자'를 그룹의 '전통'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혁신 기술' 확보가 '투자'에 필요한 금융시장 신인도 확보, 그룹 브랜드 가치 제고, 정치·정책 등 리스크 관리, 주요 고객 확보, 주가 관리 등에 직결된다는 철학을 세우지 않으면 내뱉기 어려운 발언이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기업 분석 전문가인 김경준 CEO스코어 대표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이 회장이 수십조원 단위 투자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지난 10년간 삼성그룹은 '톱 리더십'이 없다시피 했었다"며 "이 회장이 직접 '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그룹의 명실상부한 '톱 리더'로서 미래 투자 의사결정을 본인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의 '뉴 삼성' 경영의 중심으로 반도체·바이오·통신 분야가 거론된다. 세계적으로 유망한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전자·바이오로직스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역량이 집중된 분야여서다.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ARM 인수합병(M&A)설, 파운드리 최선단 나노공정 경쟁(이상 반도체), CDMO(위탁생산개발) '초격차' 지위 유지(이상 바이오),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공장 착공(이상 전기차 배터리) 등 굵직한 기술 관련 성과를 낸 영역도 이 부분이다.
투자 집행으로 이어지려면 이 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혁신 기술을 투자 집행으로 이어가느냐 여부에 '뉴 삼성'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 대표는 "과거에 삼성은 위기를 특유의 조직력과 근성으로 돌파했는데, 이런 유전자가 현 삼성 임직원들에게 얼마나 남아 있는지, 얼마나 제대로 작동할지가 (뉴 삼성 성공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며 "일각에서 지적하는 삼성 특유의 긴장감이 약화되고 치열함이 사라졌다는 지적은 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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