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 쓰려면 NFC 있는 단말기 도입돼야
카드사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NFC 도입률 저조
단말기 보급비용과 추가 수수료율 역시 장애물
글로벌 스탠다드 아닌 한국형 통신규격도 관건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한국에 애플페이가 도입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애플페이 사용이 불가능한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라는 것 아시나요? 국내 휴대폰 사용자 4분의 1이 아이폰을 쓴다는데, 왜 아직 한국에는 애플페이가 도입되지 못한 걸까요? 이면을 들여다보면 카드업계의 이권 다툼과 갈라파고스 같은 한국의 규제환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애플페이 결제방식이 어려운 이유
우선 결제방식의 차이가 큽니다. 한국에서는 비대면 페이 결제 시 ‘마그네틱 보안전송 방식(MST)’을 사용합니다. 삼성페이의 기술원리죠. 신용카드에 있는 마그네틱 정보를 무선으로 전송하는 방식입니다. 실물카드를 리더기에 긁으면 자기장이 발생하는데요. MST는 스마트폰에 자기장을 일으키는 기능을 탑재하고 휴대폰에 신용카드 정보를 담아두기만 하면 됩니다. 결제를 요청하면 카드 정보가 암호화된 ‘토큰’으로 바뀐 채 카드 리더기로 전송됩니다. 실물카드의 마그네틱 정보를 이용하고 기술원리도 같으므로 기존 단말기에도 사용 가능합니다.
‘근거리 무선 통신(NFC)’은 애플페이의 기술원리입니다. NFC는 무전기로 목소리를 주고받는 것처럼 일종의 통신절차를 이용합니다. 단말기가 주파수를 보내면 스마트폰에 탑재된 안테나가 이를 수신하는 방식입니다. 스마트폰은 저장된 신용카드 정보를 암호화해 단말기에 보내고 단말기가 정보를 받아들이면 결제가 완료됩니다. 단 자기장을 이용하는 MST와 완전히 다른 결제방식을 쓰기 때문에 별도의 NFC 기능이 탑재된 결제 단말기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NFC 단말기 보급률이 1% 정도로 낮은 국가에 속합니다. 배경에는 카드사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죠. 2015~2016년 보안이 취약한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를 IC카드 단말기로 바꾸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KB국민·하나·비씨카드 등은 단말기에 ‘NFC 기능을 넣자’고 주장했습니다. 글로벌 트렌드가 NFC로 가고 있으니 동참하자는 논리였죠. 이들 회사는 이동통신사와 모바일카드 시장에 진출하거나 NFC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업계 1·2위 주자였던 신한·삼성카드를 비롯한 나머지 회사들이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IC단말기 전환에 집중하자’는 논리였죠. 앱카드 시장을 선점한 카드사는 NFC 도입에 미적지근한 분위기였고, 다른 카드사들도 굳이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당시 여신협회에서 회의가 열리면 회의장 바깥에서 카드업계 관계자들이 지르는 고성이 들릴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언론에는 ‘NFC 연합’이란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죠.
결론은 대형·대다수 카드사의 희망처럼 IC카드 결제방식만 보급하게 됐습니다. 이에 NFC 단말기 보급이 지체됐고 NFC 방식을 사용하는 애플페이 도입도 어려워졌습니다. 문제는 애플의 현재 입장입니다. 애플은 다른 나라처럼 NFC 단말기 보급에 필요한 비용을 국내 카드사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치비용은 단말기 한 대당 15~20만원입니다. 삼성페이만큼 상용화하려면 적어도 수백만개 매장에 새로 깔아야 하는데 큰돈이 듭니다. 그래서 카드사들은 NFC 단말기 보급비용을 애플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수수료율·통신규격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
카드사 수수료율도 장애물입니다. 삼성페이는 결제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애플페이가 무카드거래(CNP)라는 이유로 카드사들로부터 결제 건당 수수료를 챙깁니다. 미국에서 0.15%를 챙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카드사들이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율은 현재 2% 안팎입니다. 정부가 2007년 4.5%에서 16년간 14차례 인하한 결과죠. 애플페이까지 도입하면 수수료 수입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통신규격도 난제입니다. 애플페이는 EMV라는 규격을 씁니다. 결제와 관련된 기술개발과 생산, 보급 등을 EMV라는 규칙에 따른다는 겁니다. 1993년에 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카드가 만들었고요, 가장 널리 쓰이는 국제기준입니다. 해외결제 기능이 있는 카드도 EMV 규격이 들어가기 때문에 외국에서 사용이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KLSC라는 규격이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초 여신협회와 9개 카드사가 만든 한국만의 독자적인 규격이죠.
왜 한국은 EMV를 쓰지 않고 새로운 규격을 만들었을까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섭니다. EMV 규격을 만든 회사에 비용을 내야 하는데, 국내 카드사가 내는 돈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관건은 EMV를 쓰고 있는 애플이 한국의 KLSC 규격을 인정해줄지 여부입니다. 애플이 만약 EMV 방식을 고수하면 카드사는 애플페이 도입 후 막대한 수수료를 계속 내야 합니다. 수수료에 통신규격비용까지 내야 하니 카드사는 애플페이에 떨떠름 할 수밖에 없죠.
애플페이가 현대카드와 도입될 거라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현대카드는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아이폰 이용자들의 관심은 커지는 상황입니다. 과연 애플페이는 산적한 과제를 넘어서고 국내에 상륙할 수 있을까요?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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