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돈 요구할 채권 있어야 강제집행면탈죄로 처벌 가능"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가압류된 조합 자금을 현금으로 인출한 조합장에게 ‘강제집행면탈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돈을 빼돌렸다는 혐의가 인정되려면 그 돈을 요구할 채권이 존재하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기소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장 A씨(85)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2013년께부터 시공사로부터 추가 공사비 61억여원을 요구받았으나 무시했고, 시공사는 2014년 6월 법원에 공사비 지급 소송을 걸면서 조합의 은행 예금에 가압류를 신청했다. A씨는 예금 강제집행을 면하기 위해 은행에 있던 조합 자금 34억여원 전액을 현금으로 인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이 사건 공사와 관련해 조합과 시공사 사이 소송이 계속 중이어서 시공사가 실질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었는지 불분명하다. A씨가 인출한 금원을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볼 자료는 없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A씨가 조합 자금을 인출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시공사에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강제집행면탈죄에서 말하는 은닉에 해당한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시행사가 조합에 돈을 요구할 채권이 있어야 강제집행면탈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형법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 손괴, 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하여 채권자를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강제집행면탈죄는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서 채권이 성립해야 하는데, 법원이 시공사에 채권이 존재하는지를 따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시공사는 2014년 조합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1심에서 추가 공사비 청구액 대부분을 인정받아 승소했다. 하지만 2심은 시공사와 조합 간 추가공사비 지급에 관한 약정이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시공사는 상고했지만, 지난 5월 소송을 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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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현재 시공사 측의 민사소송 패소로 채권이 존재하지 않아 강제집행면탈죄를 묻기 힘들다고 봤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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