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탈당 관계는 판례상 사법관계"
검찰 내부망에 해당 글을 올린 현직 부장검사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 의원을 위장탈당시킨 민주당의 조치에 대해 "'대의정치' 정신과 정당법의 핵심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도덕적·정치적 타락일 뿐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봉숙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47·사법연수원 32기)은 전날 오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위장탈당'의 효력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동료 검사들의 의견을 물었다.
공 부장검사는 "기사를 보고 두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살다살다 '위장탈당'이란 걸 다 보게 된다"며 "국회의원이 소속 당과 통정해서 전 국민이 다 알도록 말이죠"라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원래 '통정허위표시'는 민법 제108조에 따라 무효이다"라며 "'통정허위표시'는 '상대방과 짜고 하는 진의가 아닌 의사표시'를 말하는데, 요건이 딱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민법 제108조(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 1항은 '상대방과 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 가장행위의 법률상 효력을 무효로 정하고 있다.
공 부장검사는 "민 의원께서 민주당의 당론을 따라 '검수완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잠시만' 탈당하는 형식을 취하여 안건 처리를 하시고, 즉시 복당한 후 민주당의 일꾼으로 그 한몸 바치려고 하시는 것을, 민주당과 민형배 의원 뿐 아니라 전국민이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며 "그렇다면 진정한 탈당 의사가 없는 통정허위표시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민법 제108조 2항에 의하면 '통정허위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전국민이 '악의'이니 할 수 있습니다. 대항…"이라고 주장했다.
민법 제108조는 서로 짜고한 행위의 법률상 효력을 무효로 하면서도(1항), 그와 같은 통정행위의 외관을 믿고 거래한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해, 선의의 제3자에 대해서는 무효라는 주장을 할 수 없도록 했는데(2항), 이번 사례의 경우 민 의원이 진짜 탈당할 의사가 전혀 없이 다른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탈당한다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으니 제3자, 혹은 국민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무효라는 취지다.
공 부장검사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정당의 탈당 문제가 민법이 적용되는 사법적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위장탈당'은 유사 이래 최초라 판례를 찾을 수 없지만, '위장퇴직'이 무효라는 판례는 많이 있다"며 여러개의 판례를 소개했다.
▲회사방침에 따라 중간퇴직을 한 뒤 퇴직금을 수령하고 신규 입사절차를 밟았더라도 중간퇴직은 통정허위표시로서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 ▲근로자가 실제 동일한 사업주를 위해 근무하면서 일정기간 특별히 고액의 임금이 지급되는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일단 퇴직한 것으로 처리하고 다시 임용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해도 퇴직의 의사표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 등이다.
이어 공 부장검사는 "'탈당'의 법률관계가 공법적 관계라 통정허위표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정당의 가입과 탈퇴'는 사법적 법률관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당은 국회운영, 행정부의 조직 및 정책결정 등 광범위한 국정분야에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반면에 국가기관과는 달리 설립의 자유가 있고 그 법률관계에 대하여 헌법 제8조와 정당법이 규율되고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헌법 제21조, 민법, 민사소송법 등 민사법이 적용되므로, 정당의 법률관계 중 정당에의 가입과 탈퇴, 정당간의 합당행위 등 수평적인 사법적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정당법의 관계 조문과 일반 사법이 적용되고, 정당의 강제해산 등 공법적인 법률관계에 대해 서는 헌법 제8조, 정당법, 헌법재판소법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또 통합정당을 상대로 합당 결의가 무효임을 주장하면서, 총재로 선출된 자가 정당 대표로서 직무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사법적 관계라는 전제에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었다.
글의 말미 공 부장검사는 법안 강행 처리를 위해 편법을 동원한 민주당을 직접 저격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상식선에서,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위장탈당을 하여 표결을 하도록 하는 것은 '대의정치'의 정신, 정당법의 핵심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닌가요"라며 저는 사실, 민법 제108조에 따른 '통정허위표시'보다도, 민법 제103조에 따른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라고 주장하고 싶다"고 했다.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다. 성노예 계약이나 첩계약, 도박빚을 갚기로 하는 계약 등 계약 내용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할 경우 법률상 무효로 취급된다는 내용이다.
공 부장검사는 "가방끈이 짧아 더 이상 심도 깊은 탐구는 못하겠지만, 이번 '위장탈당'은 '도덕적·정치적 타락'일 뿐 아니라, 법률적인 문제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라는 질문으로 글을 맺었다.
민주당은 민 의원의 무소속 신분 전환 후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요구서를 냈다. 당초 법사위에 투입됐던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협조하면 4대 2로 안건조정위를 돌파한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었지만, 양 의원이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을 밝히자 이같이 '선수 교체'에 나선 것이다.
안건조정위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설치되는 기구다. 법사위 소속 의원 중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구성되고, 3분의 2 이상(4명)이 찬성하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안건조정위를 통과하면 소위 심사를 거친 것으로 간주돼 곧장 전체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
양 의원은 민 의원의 탈당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게시글을 올려 비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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