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한일 역사문제의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 중인 욱일기 논란은 사실 일본 내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져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국기이자 욱일기의 모태인 일장기도 논란의 대상이 됐는데, 일장기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해주지 않으며, 국기로서의 의미가 애매하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라고 한다.
일본 역사학계에서조차 일장기와 욱일기가 일본의 전통문화나 역사성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는 좀체 찾아볼 수가 없다. 욱일기의 모태가 된 일장기는 개항기인 1870년대 처음 해외로 파견된 일본사절단들이 국적 구분을 위해 함선에 달았던 것에서 시작됐고, 군국주의나 민족주의적인 의미도 전혀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 일장기는 일본어로 둥근 해를 뜻하는 ‘히노마루’라고 불렸는데, 개항 전에도 막부로부터 대외무역을 허가받은 무역선임을 인증하는 깃발이었다고 한다. 17세기 에도 막부에서는 행정편의와 재정적 이유로 값싼 흰색 천에 가장 싼 염료인 붉은색 염료로 둥글게 그린 히노마루를 인증서처럼 발행해주었는데, 이게 국기가 된 것이다.
무역인증서가 국기가 된 셈인데 일본은 당시 서구 열강들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히노마루를 국기로 쓰게 됐다고 한다. 에도 막부 시대 일본의 유일한 대외 무역항인 나가사키항에서 이 히노마루를 많이 봤던 외국 공사들은 옛날부터 일본 선박의 상징으로 유명하니 이걸 국기로 사용하라고 강권하면서 그대로 국기가 됐다고 한다. 이제 막 개항을 시작한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당한 셈이다.
이런 약소국의 설움을 씻겠다고 만든 것이 일명 욱일기였는데, 일제가 관변학자들을 동원해 가구나 회화에 쓰던 전통 문양인 욱광문양을 집어넣어 억지로 역사성이 있어 보이도록 만든 깃발이었다. 일본 왕실이 1000년 전부터 비슷한 형태의 깃발을 사용했다는 억지 주장까지 펴면서 군대 깃발로 사용했지만, 역시 정식 국기로 채택되진 못했다.
일본 내에서는 국기가 졸속행정으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계속 이어지면서 1999년 일장기가 정식 국기로 채택되기 전까지 국기 아닌 국기로 사용됐다. 1999년 끝내 채택된 것도 100년 이상 사실상 국기로 쓰여 다른 걸로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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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쿄올림픽을 둘러싼 욱일기 논란에 대해 일본 정부와 일부 극우단체들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러한 사연이 숨어 있다. 일본 우익들에겐 과거 일제의 영광을 상기시킨다는 그 군국주의의 깃발에는 오히려 근대 초기 일본이 겪은 약소국의 설움과 왜곡된 군국주의가 안겨줬던 일제 패망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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