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業스토리]역발상의 마케팅, 제품 본질에 집중
'잃어버린 10년'간 매출 44% 증가
주택부터 호텔까지 모두 '무인양품표'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제품 어디에도 브랜드 각인(로고)이 없다. 화려한 무늬 같은 디자인적인 요소도 없다. 심지어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유행을 타지 않아 어디에도 어울리고 어디에서도 튀지 않는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이 그렇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에 설립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의류와 가정용품 가구 식품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상품을 기획·개발하고 제조 유통 판매까지 이뤄진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무인양품은 브랜드는 없고(무인), 좋은 물건은 있는(양품) 곳이다. '이것이 가장 좋다(This is best)', '이것을 꼭 사야한다(I must have this)'가 아닌 '이것으로 충분하다(This is enough)'는 것이 무인양품의 철학이다. 오로지 제품의 본질만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상품 기획과 확고한 브랜드 철학 덕에 무인양품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도 성장가도를 달렸다. 199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됐고 경제성장률은 0%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무인양품 매출은 440%가 늘었고, 경상이익(영업이익에 영업외수익을 가산하고 영업외비용을 공제한 값)은 1만700% 증가했다. '무인신화'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도 전 세계 25개국, 900여 개 점포에서 3700억 엔(약 4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무인양품에 없는 세 가지 - NO 로고, NO 디자인, NO 마케팅
무인양품 성공신화의 비결은 '역발상'에 있다. 무인양품은 일반적인 기업 브랜딩 전략의 주요 요소인 로고와 디자인, 마케팅이 없다. 이른바 '3무(無)' 철학이다. 브랜드에 힘을 싣기보다는 제품의 본질, 즉 기능에 집중하자는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무인양품 제품 대부분은 로고가 없다. 로고 대신 제품 이름에 제품 저마다의 특성을 담는다. '평평하게 펴지는 노트', '쌓을 수 있는 수납함' 등이 그 사례다. 또 제품 가격 태그에는 '이 제품이 만들어진 이유'라는 문구를 적어 제품 '기능' 자체에 집중한다.
또 염색하지 않은 셔츠, 색을 넣지 않은 투명 플라스틱 용기, 색을 넣지 않은 흰 도자기 그릇 등 디자인도 단순 그 자체다. 최신 유행을 반영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소비자들 취향에 맞게 어디에나 쓸 수 있는 유용한 스타일의 디자인을 만든다. 화려한 무늬와 장식은 공간을 어수선하게 하는 요소에 불과하다는 게 무인양품의 생각이다.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 하라 켄야는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화려한 디자인은 가격에 거품을 끼게 하는 요소다. 이는 곧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7000여 개의 상품에 ‘단순한 디자인’을 적용하는데, 이 단순한 디자인에 부합하는 상품이 만들어지기 까지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걸친다. '무인양품만의 독자적 제품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제품을 더 단순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무인양품이 지향하는 가장 큰 가치는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제품의 본질적인 기능만 남기는 것'이다. 무인양품이 디자이너 채용 공고에 '디자인을 하지 않는 디자이너를 모집한다'고 적을 정도다.
불필요한 요소가 제거되면서 마케팅도 불필요해졌다. 무인양품은 기업 마케팅의 기본이 되는 'STP 전략'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시장을 세분화(Segmentation)하고, 고객을 선정하고(Targeting), 이에 맞는 상품을 내놓는(Positioning) 방식인데 무인양품은 특정 소비층을 겨냥하지 않는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지향한다. 하라 켄야는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적당한 테이블'이나 '나이 든 부부가 사용하는 테이블'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단순한 디자인은 어떤 라이프스타일에도 어울린다. 이것이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가치다"고 말한다.
주택부터 호텔까지 모두 '무인양품표'
무인양품은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의 대명사로 불린다. 최근 미니멀리즘은 우리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무인양품은 무인양품표 주택과 호텔을 내놨다. '일상의 기본이 되는 것만을 팔겠다'는 무인양품 브랜드 콘셉트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무인양품는 생활용품을 넘어 주택까지 판매 중이다. 2004년 '나무의 집'을 시작으로 지난 2017년 오두막 '무지 헛(MUJI HUT)'까지 시판했다. 무인양품은 이 오두막을 "마음에 드는 장소만 있다면 어디든 놓고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무인양품의 가치와 맞닿아 있는 설명이다.
또 무인양품표 호텔 '무지호텔(MUJI Hotel)'도 출시했다. 지난 2018년 1월 중국 선전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베이징과 일본 도쿄 긴자에도 문을 열었다. 객실 내부는 모두 무인양품 가구와 가정용품으로 채워져 있고, 호텔 내부에는 무인양품 매장과 서점이 들어서있다. 무인양품을 직접 체험하고 구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 셈이다.
처음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이 무지호텔을 만든 건 단순한 이유였다. "중국 출장을 갈 때마다 지나치게 넓고 고급스러운 방에 묵었다. 작은 방을 요구하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작은 방을 예약하면 서비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적당한 호텔'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1호점과 2호점이 무인양품의 본고장인 일본보다 먼저 개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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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인양품은 대중교통 사업도 넘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핀란드의 자율주행기술업체 '센서블4'와 협력해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가차(Gacha)'라는 자율주행버스를 개발 중이다.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인양품은 대중교통의 자동주행이 고령사회의 ‘필수’로 여겨질 것에 대비한 장기 플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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