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RG 긴급회동
[아시아경제 전경진 기자] "저는 부행장은 아니고 대리 참석자인데..."
24일 오후 5시. 금융감독원 9층 회의실에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이 금융당국의 호출을 받고 집합했습니다. 이날 오전 정부가 발표한 '중소조선사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방안'과 관련해 은행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몇몇 시중은행에서 부행장이 아닌 대리참석자들이 왔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금감원이 예고도 없이 당일 부행장들을 호출한 관계로 여신담당 본부장이나 부장들이 헐레벌떡 왔다고 합니다.
이날 A 시중은행 부행장은 지방 출장 중이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귀경길에 올랐지만 교통체증으로 결국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B은행 부행장의 경우엔 휴가 중이었습니다. 결국 두 은행은 다른 보직의 임원을 대리참석시켰습니다. 다른 시중은행 부행장들도 급하게 일정을 바꿔 회의에 참석하거나 다른 임원을 대참시켰습니다.
금융당국이 정부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은행 임원을 소집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호루라기만 불면 집합해야 하는 은행과 금융당국의 소통구조는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관치의 구태(舊態)', '관 주도 금융'을 굳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장관, 차관급만 아니라 국장, 과장급도 은행장, 부행장을 갑작스럽게 호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의사결정을 나눈다기보다 통보를 받거나 훈시를 받는 자리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날 긴급소집은 단 30분만에 해제됐습니다. "우리가 필요하면 RG발급도 알아서 할 텐데…"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여신담당자의 말을 곱씹어봅니다.
전경진 기자 kj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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