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동참하게 되면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연기금의 참여 가능성도 커서 내년이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원년이 될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의 의사결정과 증시, 투자 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연기금과 보험업계에서는 아직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이 없다. 하지만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한화생명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험업계로의 확산은 예정된 수순으로 파악된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생명보험업계의 지난 5월 기준 일반계정 전체 운용자산은 634조원에 이른다. 1997년 86조원에서 20년만에 7.4배 규모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삼성생명이 200조원으로 압도적인 1위이며 한화생명, 교보생명, NH농협생명 등을 포함한 4개 사가 전체 자산의 65%를 차지한다.
업계 1위와 2위 보험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게 되면 다른 보험사들도 이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투자 대상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과 수익성 향상을 꾀하기 때문에 이런 흐름에서 배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태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생명에 대한 보고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적정한 자본 여력 수준에서 주주친화 의지는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에게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자로서 투자 대상 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 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수탁자 책임’을 부여한다. 2015년에 금융위원회 주도로 초안이 마련됐으나 참여가 없었고,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중심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 공표됐다.
이후에도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자산운용업계를 중심으로 50곳이 현재 참여했거나 참여 의향을 밝혔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주식 투자 비중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공적연금펀드(GPIF)는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24%였던 주식 투자 비중을 50%까지 늘린 바 있다.
532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큰손’ 국민연금공단은 관련 연구용역을 거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여부와 방식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6월 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혀 아예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 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업 측의 불합리한 의사결정이 줄어들 수 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대기업 총수 위주의 지배구조 아래에서 빠른 투자에 기반한 성장 전략이 유효해 기관투자자들의 주주관여 활동이 필요치 않았다면, 이제는 저성장 국면에 진입해 다수 투자자들이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면서 “기관투자자들의 건설적인 관여 활동으로 기업 경영진은 자본효율성이나 배당을 높이거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향상 방안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주가 상승의 촉매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정부 경제 정책이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초점을 맞추므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정착과 확대에 주력할 것”이라며 “일본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기업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확대했고, 지난해 대만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들이 부각됐다”고 전했다.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이 9.8배 수준인 반면 일본 증시는 14.3배, 대만은 14.1배에 이른다. 그만큼 지배구조 개선으로 인한 상승 여지가 큰 셈이다.
세계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11곳인데 대부분 기업가치 재평가가 이뤄졌다. KB증권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FTSE100지수 PER은 코드 도입 이후 90% 할증됐고 네덜란드와 남아공 역시 각각 60% 높아졌다.
지주회사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준섭 연구원은 "기관투자자의 지분이 많으면서 배당도 많지 않은 회사들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대기업집단 지주회사들에 주목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이들 지주회사 자회사들이 배당성향을 높이게 되는 유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결국 지주회사의 배당수입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증시 재평가 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문화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2014년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70만달러였으나 지난해에는 4740만달러로 크게 증가했다”면서 “사회적 인식 제고와 GPIF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사회책임투자 확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와 함께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공유된다면 일본처럼 사회책임투자 부활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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