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오는 11월에 금융지주사 지배구조에 대한 적나라한 성적표가 나온다.
금융업은 특성상 일반 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배구조 시스템을 갖추도록 의무화돼 있다. 지금까지는 이같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다보니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금융지주사만 따로 떼서 보다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한다. 각 사별로 편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현재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조사 평가를 위한 모형을 만들고 있으며 다음달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해 오는 11월 말쯤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DGB금융지주, JB금융지주, BNK금융지주, 한국금융지주, 메리츠금융지주 등 9곳이 대상이다. 등급은 S, A+, A, B+, B, C+, C 등 7개로 분류한다.
지난해 8월 시행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사외이사와 감사 등 경영 통제기구의 위상 강화, 리스크와 내부 통제 등 투명성 강화 기구의 독립성 강화 등을 담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나 2014년 KB 사태 같은 지배구조 리스크를 방지하는 차원인데, 이번 평가는 이 법에서 규정한 조건들을 기본으로 해서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평가에서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운영하기만 하면 점수를 받는 식이나, 이번 금융지주사 평가는 사외이사에 대한 교육을 연간 몇 회나 실시하고 있는 지 등을 꼼꼼히 따져 묻는 식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ESG평가 지배구조 분야에서 대부분 A+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성적이 추락하는 곳도 나올 수 있다.
핵심은 위험 관리와 내부 통제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위험관리 부서와 사외이사의 전문성, 이사회와의 소통 정도 등을 평가하는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금융업 특성상 계열사 간 지원 문제를 다루긴 쉽지 않지만 한국금융지주와 메리츠금융지주 등 오너가 있는 지주사들은 제한적으로 살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가 계열사의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얼마나 개입하는지도 평가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은행의 비중이 큰 지주사들의 경우 다른 업권 계열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의사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에 대한 평가도 관심꺼리다. 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KB에서 크게 불거진 것처럼 최고경영자의 낙하산 논란이 지속돼 왔는데, 후보군을 얼마나 독자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지를 묻는 형식 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부적절한 인사를 했던 하나금융지주도 그로 인해 감점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자본시장에서 지배구조가 주된 화두인 것을 감안하면 평가 결과에 따라 기관의 투자 결정이나 의결권 행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올해 금융지주사를 시작으로 내년부터는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등으로 평가 대상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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