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권인수팀, 보조금 축소 추진
도널드 트럼프의 2기 행정부가 선거 운동 기간 공언해온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보조금·세액공제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인수팀의 에너지정책팀이 전기차 구매 보조금과 첨단제조 세액공제(AMPC) 폐지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이같은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한국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의 단기적인 피해가 불가피한 가운데 IRA 보조금 실제 실행 여부와 기업들의 대응 방법에 관심이 모인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의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한 언론은 미 상원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공화당 측이 IRA 법안의 폐지 대신 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AMPC도 그 대상이라고 보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IRA를 자주 비판했으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EV mandate)'를 끝내겠다고 거듭 공약한 바 있다.
미국 IRA 법안 크게 3가지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소비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생산 세액공제(AMPC) 등 3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투자 세액공제는 배터리, 신재생 분야의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경우 투자 기업에 투자 규모의 최대 30%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AMPC는 배터리, 신재생 분야 기업이 미국 내에서 생산·판매 시에 품목별로 규정된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배터리 기업의 경우 배터리 1㎾h(킬로와트시)당 최대 4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최종소비자에게 혜택이 가는 전기차 보조금과 달리, AMPC는 생산 기업이 인센티브를 받는다.
1000만원 보조금 축소…美 전기차 성장 꺾이나
트럼프 당선 이전 리서치 업체들은 '캐즘(성장산업의 일시적 정체)'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장의 여전한 성장세를 전망했다. 시장조사기관 BNEF는 올해 7월 2027년 미국 전기차 판매 점유율이 전체 자동차 판매 중 3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0% 비중에 비해 3배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체 전기파 판매량은 지난해 150만대에서 450만대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예측은 약 1047만원 가량인 전기차 보조금이 지속적으로 지급될 것을 전제로 한 예측이다.
구매 보조금 축소로 전기차 가격대가 올라가면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년께 전기차 시장이 본격 개화를 예상하고 미리 투자한 전기차·배터리 기업에게는 당분간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등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장 건설·가동 계획의 일부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완성차 업체들은 전동화 계획을 늦추고 있고
전기차·배터리 업계의 가격 경쟁도 더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보다 1000만원 이상 비싼 전기차를 소비자들이 선뜻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전기차 원가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셀·소재 가격은 하락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장우 에코프로비엠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은 "(보조금이 축소된다면) 비용 하락 압박은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 연방 정부의 정책이 바뀌더라도 지방정부의 전동화 계획 변동은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방정부별로 각기 다른 전동화 목표를 내걸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같은 지역의 전동화 계획은 속도가 빠르다. 캘리포니아 주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정부는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 충전 인프라 자금 지원, 연비 표준 규정 등을 통해 전기차로의 전환을 독려한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에서 판매된 차량의 25%는 전기차였으며 주정부는 전기차 판매를 2030년 65%로 늘릴 계획이다.
배터리사 실적, 직접 영향 주는 'AMPC' 향방은
배터리 기업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는 정책 변화는 AMPC의 축소 여부다. AMPC는 배터리·태양광 등 친환경 산업을 미국 내에 유치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이같은 정책 변화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6개 공장을 가동 중이고 내년부터 16개 공장이 준공 후 순차적으로 가동을 시작한다. 배터리 3사의 생산 능력은 2027년 이후 연산 610.5GWh에 달하는데 고성능 전기차(80㎾h 기준) 760만대 이상에 탑재될 수 있는 양이다.
전기차 캐즘에 따른 업계 전반의 불황에도 AMPC는 배터리 업계의 영업익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3분기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은 4660억원, SK온은 608억원의 AMPC를 받았다. AMPC를 제외하면 적자였지만 AMPC가 실적에 반영되면서 흑자 성적표를 받았다. 삼성SDI도 내년부터 AMPC 규모가 본격 확대될 전망이다.
증권가는 AMPC 혜택이 종료되는 2032년까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받게될 보조금이 수십조~수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2032년까지 배터리 3사의 AMPC 규모가 총 179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LG에너지솔루션 94조원, SK온 45조원, 삼성SDI 40조원이다. 삼성증권은 LG에너지솔루션이 2032년까지 받을 AMPC의 가치를 32조 4000억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AMPC 혜택 축소는 배터리사들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에서 AMPC 폐지까지 추진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AMPC는 지역 경제 등과 복잡한 셈법으로 얽혀 있어 국내에서는 폐지보다는 AMPC 축소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당선에 톡톡히 역할을 한 러스트벨트, 선벨트 지역에 걸쳐 배터리 공장들이 세워져 IRA의 전면 폐지는 해당 지역 경제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러스트벨트의 오하이오·미시간·인디애나·켄터키, 선벨트의 애리조나·조지아·테네시 등에 50조원 이상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석희 SK온 사장 역시 최근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영향을 점검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배터리 업계 간담회 직후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 시)배터리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AMPC의 급격한 변화는 어렵지 않을까 판단한다"며 "IRA 폐지에 반대 서명을 했던 공화당 의원 18명 중 15명이 이번에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보조금 축소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리 기업들은 포토폴리오를 다변화해야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인공지능(AI) 전력 수요 상승에 따른 ESS(에너지저장장치), 로봇, 우주 산업 등 전기차 산업 외에 배터리 공급처를 다양화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은 최근 북미에 ESS 계약을 잇달아 따낸 바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스페이스X의 내년도 우주왕복선에 전력 공급용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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