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법원이 문화ㆍ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유죄에 한층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모든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게 법원이 '엄중한 책임'을 물은 만큼,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박 전 대통령도 안심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는 27일 블랙리스트 작성ㆍ관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김 전 실장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부분에선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판단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와 문체부 보고서 내용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블랙리스트 자체가 위법하다고 인정한 만큼 향후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정도 등을 어느 정도 입증할 경우 박 전 대통령에게 얼마든지 유죄 판결이 나올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박근혜 피고인이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무죄가 선고됐다거나 선고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법원이 김 전 실장의 양형 사유 중 하나로 '계속적인 혐의 부인'을 꼽은 것도 박 전 대통령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재판부는 전날 "김기춘 피고인은 자신은 전혀 지시받거나 보고받지 않았고 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며 "청문회에서도 자신은 가담하지 않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 전 실장이 사실관계는 시인하고 자신의 살아온 궤적과 신념 등을 강조해 권력남용에 대한 주관적 구성요건(고의성)을 빼는 전략으로 갔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도 줄곧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과정부터 탄핵과 재판에 이르기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국정농단' 연루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때마다 그 '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입지도 좁아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은 지난 5월 '비선진료' 의혹을 받는 김영재 원장 부부의 선고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국정농단에 주도적으로 편승했다"고 언급했다.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의 선고를 내린 재판부도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의 그릇된 일탈에 충성을 다해 국민을 배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질타했다.
전날에도 재판부는 '노태강 국장 사직강요'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대통령의 지시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다른 '국정농단'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위법을 1차로 인정한 셈이다.
블랙리스트 사건 선고로 국정농단 1심 재판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법조계는 다음달 예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 사건 선고가 박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 '결정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관련자들의 계속된 유죄 판결에 전략을 고심하는 한편, 가장 형량이 무거운 뇌물수수 혐의 방어에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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