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합의 北도발에 '선회'
틸러슨 "유엔 대북제재 참여 안하면 위험한 정권 돕는 것"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이민찬 기자] 북한이 4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까지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말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은 대한민국이 주도한다' '올바른 조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지 불과 나흘만이다.
특히 국방부가 5일 북한의 '화성-14형'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신형 미사일'로 잠정 평가함에 따라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압력은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전날 북한의 ICBM 발사에도 불구하고 '대화와 제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기조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내부에서는 압박에 보다 무게를 두는 등 발빠른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ICBM으로 확인된 만큼 제재 강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는 최고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은 오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만 가중할 뿐임을 절실히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한미가 어떤 대응을 취할지 모른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미사일 연합 무력시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먼저 제의한 것도 강경대응으로 기조가 바뀌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우리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 태세를 북한에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밝혀 북한이 도발할수록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대북 기조 변화 가능성이 큰 것은 ICBM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거리상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핵탄두를 결합할 경우 전세계가 갖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특강에서 북한의 ICBM 기술에 대해 "오차범위가 50km가 될 정도로 엉성해도 북한으로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내부의 체제 결속은 물론이고 정치외교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대등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성-14 발사 성공을 선언한 직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협상테이블에 앉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위한 한미공조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굳건한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조치를 비롯해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 이후 사실상 강경기조를 선언했다. 틸러슨 장관은 4일 오후(미국 현지시간) 공식성명을 통해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북한 노동자를 초청하거나 북한 정권에 경제적, 군사적 이익을 주거나 유엔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위험한 정권을 돕고 방조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틸러슨 장관은 "세계적인 위협을 멈추도록 전세계적인 행동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주도의 평화정착 노력을 용인한 것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대화'보다는 제재 측면에서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한국 주도의 평화정착 노력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 무게가 실리면서 대화 수위는 상대적으로 훨씬 높아졌다. 핵동결 조건에서 확실한 핵폐기 수순을 밟아야 하는 쪽으로 대화 조건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김태효 교수는 "북한은 핵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없다고 했다"면서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까지 북한의 핵동결을 조건으로 시도됐던 대화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동결만 갖고 대화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대북 제재 강화 움직임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조기 배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포함한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드 배치 시기를 내년으로 미룬 상태다. 일각에서는 북핵 위협이 증대되는 만큼 조기 배치 가능성도 점치고 있지만 정부가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정대로 평가를 실시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통일부의 입장도 관심의 대상이다. 통일부는 새 정부 들어 4일까지 총 50건의 민간단체 대북접촉을 승인했다. 하지만 제재와 압박이 강화될 경우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의 ICBM 실험 당일 승인된 대북접촉 1건에 대해 "북한의 중대발표 시점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대발표 이후에 심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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