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사람 중심의 경제를 만들겠다."
청년들이 '헬조선'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는 시대,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과 재벌 대신 사람 중심의 경제를 천명했다. 일자리와 복지 등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해 경제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문 정부의 성장전략인 '제이(J)노믹스'는 문 대통령의 이름인 '재인'과 제이(J)커브 성장을 추구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당장은 성장률이 하락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J자 모양의 성장곡선을 그린다는 구상이다. 비전은 확고하지만, 결국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과거 정부들은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기업들이 잘 돼서 투자를 늘리면 일자리도 늘어나는 '낙수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낙수효과의 한계가 확인됐다"며 직접 정부가 일자리에 투자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소방관과 사회복지사 등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늘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인 공공부문 비중을 절반으로 높이고,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민간부문에서도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한다.
기업들이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줄이는 가운데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경기 개선이 반드시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수출 호조로 경기가 개선됨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고용 지표가 바닥을 기는 것도 대부분의 수출 실적이 고용유발 효과가 작은 반도체 업종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낙수효과가 효력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이에 기대서만 성장을 해 나갈 수는 없다.
문제는 '돈'이다. 문 정부는 성장을 위해 매년 재정지출을 7%씩 늘리겠다고 천명했다. 평균 3%대였던 이전 정부의 두 배다. 5년간 178조원이 드는 공약 패키지도 마련했다. 연평균 35조6000억원 수준이다. 공공일자리 81만개를 늘리는 데만 연 4조원 정도가 투입되고, 복지지원에 18조원, 교육에 5조원이 투입된다.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문 정부는 포퓰리즘 논란을 의식해 재원조달 방안을 미리 준비했다. 비리예산 근절 등의 재정개혁을 통해 5년간 112조원, 세입개혁으로 66조원 등 178조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연 10조원 내외인 세수증가분도 공약 이행에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해 세수가 10조원 더 걷힌 것은 일시적인 요인에 기인했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기업실적 개선으로 법인세가, 부동산시장 상승으로 소득세가 더 걷혔지만 앞으로도 이런 시장 상태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초과 세수로 돌아선 지도 채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3년 연속 정부 예측보다 세금이 덜 걷히는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3년 연속 세수 펑크(결손)가 나자, 또 펑크가 날 것을 우려해 세수 예측을 보수적으로 한 것도 초과 세수에 기여했다"고 귀띔했다.
재원 조달 방안으로 내세운 개혁 역시 쉽지 않은 만큼,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간 이전 정부의 '증세 없는 개혁'처럼 눈 가리고 아웅 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정부는 세수결손이 나자 결국 증세라는 수단에 손을 댔지만, 법인세 대신 서민들이 애용하는 담뱃세에 손을 대면서 광범위한 조세 저항에 부딪혔다.
정부 주도의 J커브 성장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공공일자리를 통해 고용을 늘리면 사람들이 돈을 써 내수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지만, 내수가 살아나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딜 수 있다. 또 결국 질 좋은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오는 만큼, 정부가주도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바꿀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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