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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들도 함께"…30년차 특수교사의 하루

시계아이콘02분 31초 소요

등·하교 지도부터 식사·용변처리까지 특수교사 몫
학생 4명당 교사 1명 필요하지만 충원율 65% 불과
"우리동네는 안돼" 주민 반대에 특수학교 신설도 난항


"장애학생들도 함께"…30년차 특수교사의 하루 19일 낮 서울 중동에 위치한 한국우진학교에서 박은주 교사가 학생 진희(가명) 양에게 점심을 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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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우리반 아이들도 또래마냥 웃긴 말, 비속어도 좀 쓰고, 선생님 흉도 보고 그러면 좋겠어요. 다들 얼마나 아기 같고 착한지 몰라요."


서울 마포구 중동에 위치한 한국우진학교 선생님들의 하루는 여느 학교와는 조금 다르게 시작한다. 오전 8시30분, 통학버스가 교문에 들어서면 교사와 치료사, 보조교사들이 모두 내려와 학생들을 마중해야 한다. 차에서 내리는 발걸음이 헛디딜까 한명 한명 손을 잡아 이끌고, 휠체어를 먼저 내린 뒤 학생들을 옮겨 앉히고 다시 교실까지 데리고 올라간다. 이 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뇌병변장애 1급으로 신체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교직 생활 30년차 박은주 교사(53)가 맡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2반 교실에서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는 학생은 현우(가명) 한 명 뿐이다. 다른 세 학생은 교실에서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그마저도 똑바로 앉아 있기 힘겨워 휠체어에 연결된 가슴벨트와 골반벨트로 몸을 단단히 고정시켜줘야 한다. 척추가 에스(S)자로 휘다시피한 진희는 요즘엔 교실 한쪽 침대에 누워 수업을 들을 때가 더 많다. 선생님은 진희가 좋아할까 싶어 침대 위에 꽃모양 모빌도 달았다.


국어·영어·수학 등 일반 교과목들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교과서로 배운다. 하지만 스스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당장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눈짓으로 가리킨다거나, 음성이 녹음된 기계의 버튼을 눌러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반복된 연습을 통해 이따금, 아주 미미하게라도 학생들이 변화를 보일 때가 교사에게는 가장 보람된 순간이다.


하지만 학생들마다 장애 정도가 다르고, 그날그날의 컨디션도 차이가 있다. 수업중에 무언가 불편한 듯 짜증이 난 학생은 자세를 바꿔주고 화장실에 데려가거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것도 모두 특수교사가 해야 하는 일들이다. 고등학생이나 된 아이를 하루에도 수차례 들었다 앉히고, 일으켰다 눕혔다 하노라면 어깨와 허리에 무리가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힘이 아닌 요령이 필요하다. 각 반마다 보조교사가 배치되고 자원봉사자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선 학생 한 명당 교사 한 명씩이 달라붙어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각 반별로 식탁마다 음식이 담긴 식판이 준비되고, 잘 씹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잘게 다진 반찬이 나오기도 한다. 밥 시간을 아는 듯, 진희가 입을 달싹거리더니 막상 선생님이 떠넣어 준 하이라이스를 조금씩 뱉어낸다. 박 교사가 "이런, 오늘은 좋아하는 고기 반찬이 없어 실망인가?"하며 능숙하게 수저로 음식을 다시 밀어 넣어주고, 진희는 다시 반쯤 흘려가면서도 조금씩 삼켜 천천히 식판을 비웠다. 박 교사는 "이따금 점심 먹고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교실로 올라가는 동안 뭐라뭐라 옹알이도 한다"고 귀띔했다.


같은 반 민정이의 점심은 보조교사가 맡았다. 밥을 떠 민정이 입에 넣어주고는 "냠냠" 소리까지 내며 씹는 시늉을 해 보이며 음식을 잘 넘기는지 살피느라 잠시 의자에 앉을 새도 없다. 옆에선 앳된 모습의 공익근무요원 선생님이 한참 더 앳된 얼굴의 성진이에게 포크를 쥐어주고 티슈로 입가를 연신 닦아주며 밥을 떠먹였다. 그나마 혼자서 수저질을 하는 현우가 스스로 점심을 다 먹고 칭찬을 받아 으쓱해하는 동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 여교사는 서둘러 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한 시간을 걸려 등교하고, 4교시 수업을 받고, 점심까지 먹은 학생들은 5교시 쯤엔 누워 쉬거나 재활훈련을 받는다. 다리 근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조기구를 잡고 걷는 연습을 하거나 손 조작 능력을 키우는 활동 등이다. 이 때마다 몸을 지탱하는 벨트를 풀거나 다시 묶어 고정하는 일도 모두 교사들의 몫이다. 방과후활동까지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는 등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명 한명 다시 통학버스에 태워 배웅한다.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학생들과의 일과가 끝나면 그 때부터는 다시 내일 수업준비나 학생들의 행동발달 기록, 각종 행정업무 등을 처리해야 한다.


박 교사는 "이 아이들이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당연히 갖고, 차별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우리사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사가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법을 알려줄 순 있어도 또래 아이들이 나누는 정서적인 교감은 가르쳐 줄 수 없기에 함께 배우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특수교육 대상 유치원생과 초·중·고등학생은 8만7950명에 이르지만 이 중 특수학교에 재학중인 장애학생은 2만5467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상당 수가 매일 먼 거리를 돌아 등교하고 있다. 나머지 는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4만6645명)이나 통합학급(1만5344명)에 다닌다. 교육부는 현재 전국에 172곳인 특수학교 수를 2020년까지 16곳 더 추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의 반발로 학교 신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도·복합장애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생 4명당 교사 1명이 배치돼야 하는 특수교사 법정정원도 해마다 늘고 있지만 충원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전국 특수교사 수는 1만8772명, 이 가운데 계약직인 기간제교사를 제외하면 특수교사 확보률은 65.9%로 일반교사 확보율 80~90%에 한참 못 미친다. 특수교육 보조인력 1만1200여명은 모두 계약직 또는 무기계약직이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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