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크' 5월28일까지 대학로 공연
문제작 '오감도'서 모티브…미스터리 스릴러 3인극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유난히 흰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로 식민지 시대 종로 거리를 방황하던 시인 이상(李箱ㆍ본명 김해경ㆍ1910~1937). 그는 고독과 절망 속에 예술혼을 불태우고 희망의 날갯짓으로 비상한 천재였다. 추상화를 보듯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개척한 이상의 시가 창작뮤지컬 '스모크(SMOKEㆍ연기)'로 새롭게 피어났다.
'스모크(작ㆍ연출 추정화)'는 이상의 시 중 가장 문제작으로 꼽히는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오감도'는 1934년 7월24일부터 8월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실렸다. 국한문혼용체, 띄어쓰기 미사용 등 일반 작문 형식을 파괴하고 내용까지 기괴한 그의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난해시로 물의를 일으키며 연재가 중단됐다.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 중이다/나는 지금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오감도' 제15호 중)
이렇듯 '거울' 속 '나'를 탐구하며 불안과 갈등을 오간 시인의 내면을 젊은 배우 세 명이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미스터리 스릴러극으로 옮겼다. 영화ㆍ공연 제작사 더블케이필름앤씨어는 지난해 12월 트라이아웃 창작공연으로 작품을 선보인 후 정식 뮤지컬로 다시 관객을 찾았다. 대사와 가사를 간결하게 압축해 극의 밀도를 높였고 뮤지컬 넘버(음악)는 한층 드라마틱해졌다. 아울러 책상과 노트, 축음기 등 상징적 소품과 영상을 활용해 시대의 분위기를 담았다.
작품 제목 스모크는 열정, 고뇌, 절망 등 시인의 다양한 감정들이 내면에서 다 타버리고 연기만 남은 것을 암시한다. 실제 이상의 문학에서는 억압된 의식과 좌절된 욕구, 억압에 대한 반항과 불순종,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드러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超)',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늘 바다를 꿈꾸는 '해(海)',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紅)' 세 사람이 함께 머무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위대하고 불가해한 이상의 시는 긴장감 넘치는 극 전개와 감각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깊은 몰입감을 준다.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과 예술가의 불안ㆍ절망ㆍ고독, 나아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날고 싶었던 열망과 희망 등이 세 등장인물 위로 투영된다.
핵심 소재인 오감도 외에 '건축무한육면각체' '회한의 장', 소설 '날개' '종생기' 등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을 드러낸 이상의 대표작들을 대사와 노래가사에 절묘하게 담아냈다. 이 중 날개는 오감도와 더불어 극의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극 초반에 나오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대사는 극 마지막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이어지며 예술가의 비애가 '승화(昇華)'의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긴 프리즘으로 포착한다.
추정화 연출은 제15호 시에서 이상의 여러 얼굴을 봤다. 시대와 발이 맞지 않아 절름발이 인생을 살고 있는 모더니스트. 자기 시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분노하고 좌절한 사나이. 한편으로는 위트와 패러독스(역설)를 즐기며 희망을 좇아 비상한 미래지향적 예술가라고 했다.
추 연출은 지난 23일 가진 간담회에서 "살다 보면 행복에 겨운 순간만 살 수 없다. 고통과 절망은 행복만큼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했다. 또 "극한의 고통 속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 역시 각자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 아픔을 견뎌내다 보면 이상의 표현처럼 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시를 쓰는 남자 '초' 역은 김재범ㆍ김경수ㆍ박은석이,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 역은 정원영ㆍ고은성ㆍ윤소호가 맡는다. 부서질 듯 아픈 고통을 가진 여인 '홍' 역은 정연ㆍ김여진ㆍ유주혜가 연기한다. 오는 5월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무대에서 공연된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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