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이현주 기자, 이민우 기자]활기찬 축제 분위기의 촛불집회와 풀 죽은 장례식 분위기의 탄핵 불복 집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후 첫 주말 서울 도심의 표정은 이렇게 엇갈렸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11일 오후4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주최한 20차 촛불집회는 한바탕 잔치 마당이었다. 영상 15도의 따뜻한 봄 날씨 속에 이날 오후5시30분 현재 20만명의 시민들이 삼삼 오오 모여들어 민주주의와 시민의 승리를 즐겼다.
시민들은 축제분위기 속에서 '촛불의 승리'를 선언하며 박 전 대통령 구속, 황교안 권한대행 퇴진, 공범자 처벌 요구 및 세월호 인양 등을 촉구했다.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서명 운동ㆍ캠페인들을 통해 향후 촛불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날 광화문광장은 영상 15도. 시민들은 추운 겨울이 가고 찾아 온 봄을 박 전 대통령 파면과 더불어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는 문구를 비롯해 헌법재판소의 전날 파면 선고를 지지하는 피켓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선 '촛불이 어둠을 이겼다' '축 탄핵' 등 글이 적혀 있는 화환들이 놓여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아직 청와대를 떠나지 않은 것을 빗댄 듯 "청와대는 무직자가 있는 곳이 아니다"는 글도 눈에 들어왔다.
사드 반대, 탈핵,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보장,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과 관련된 서명운동, 캠페인도 전개됐다. 이들은 향후 촛불의 힘을 모아 이같은 의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을 굽고 화환, 장미꽃다발이 등장하는가 하면 탄핵 기념 한정판 배지 등을 나눠주는 등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다. 탄핵을 축하하는 의미에 꽃을 단 70년대식 포니 자동차가 등장했다. 박사모에 맞서 평화를 지켜낸 공로상 '노발평화상'을 나눠주는 시민들도 있다.
전을 구워 나눠주던 시민 우호창(47)씨는 "훨씬 오래 갈 줄 알았는데 빨리 끝나서 고맙다"며 "자원 봉사자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지금껏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니의 주인 백은종씨는 "이번 탄핵안 인용으로 젊은이들에 정의감을 일깨우고 도덕성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포근한 날씨 속에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들부터 어린 아이 손을 잡고 온 가족들도 많았다.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광장을 누볐다.
강원도 평창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날 집회에 참여한 김기탁(41)씨는 "아이들에게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오게 됐다"며 "기득권만을 위한 나라가 아닌 아이들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선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시인 99명이 쓴 시집도 판매됐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화제가 됐던 진도아리랑을 개사해 화제가 된 문태심씨, '박근혜에게 고하는 8자시'를 낭독했던 여성 시민 등이 연단에 올라 '다시 듣는 발언' 시간이 개최됐다. 오후 5시30분부터는 '2017 촛불권리선언' 발표에 이어 1~20차까지 이어진 촛불집회 종합보고를 진행한다. 이어 '염병하네'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청소노동자 임애순씨와 4ㆍ16가족협의회 등도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오후 6시30분부터는 행진을 이어간다. 세종대로 로터리부터 종로ㆍ을지로 등을 거쳐 다시 세종대로, 총리관저, 청와대 200m 지점인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각각 3갈래다. 행진을 마친 후인 오후8시쯤부터는 광화문광장 북단 무대에서 권진원, 전인권, 한영애, 조PD, 뜨거운 감자 등 가수들이 출연하는 축하 콘서트가 열린다.
한편 친박단체들도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탄핵 불복종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ㆍ파면 결정에 대해 "역모이자 반란"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이날 서울 대한문 앞 시청광장에서 열린 '제1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전에 비해 확 줄어든 참가자 숫자에서 알 수 있듯 집회 분위기도 전날의 폭력적ㆍ광기어린 분위기보단 한층 가라앉았다.
탄기국 측은 이날 집회에서 헌재의 탄핵 결정에 대해 정면으로 불복을 선언했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성명서를 낭독해 "탄핵 결정은 헌재발 역모였고 반란"이라며 "최소한의 구성 요건인 정족수마저 외면하고 말도 안 되는 판결문으로 국민을 우롱하면서 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이 판결은 무효"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이었던 김평우 변호사,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연사로 무대에 올라 헌재의 판결을 비난하면서 '탄핵 불복'을 촉구했다. 한편 집회가 한창 중인 오후 2시40분 께 시청광장에 마련된 '애국분향소'에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모습을 드러내 관심을 끌었다. 그는 "탄핵 인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당성이 부족한 탄핵으로 정치적 타살"이라고 비난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4시경부터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방향에서 회현역, 남대문 시장 등을 거쳐 다시 시청광장으로 행진한 후 오후 6시부터 2부 집회를 시작했다.
한편 경찰은 전날 집회의 폭력 양상을 고려해 207개 중대 1만6500명을 배치했지만 현재까지 큰 충돌은 없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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