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도입 추진..5년만에 백지화
정동영 의원 등 주택법 개정안 발의
업계 자금조달 비용 증가 소비자 부담
대기업 위주 시장재편 공급축소 우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권재희 기자]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통령 선거의 변수에 맞물려 14년만에 재등장한 아파트 후분양제도 도입 문제가 부동산 시장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후분양제도 관련 법안 마련을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진 가운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오는 17일 '후분양제 도입의 장단점 및 시장 영향에 대한 분석'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 후분양제도는 분양 및 부동산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 제도 도입시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올해 공급과잉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논란이 되고 있어 건설사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15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전날 전체회의에서 가결한 주택법 개정안을 조만간 법안소위에서 다루기로 했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후분양제도를 의무화한 법안이다. 후분양제는 주택 수요자가 청약을 하기 전에 소액의 청약금을 내고 분양예약을 한 후 1~2년 후에 본청약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지난 2003년 한때 정부가 도입을 검토했지만 현재 주택법에서는 선분양제와 후분양제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윤영일 의원도 같은 날 후분양제 도입을 촉구하는 '주택법 및 주택도시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두 개정안 모두 80% 이상 공정을 진행한 후 입주자를 모집하도록 규정한 게 공통점이나 정 의원은 사전입주예약제를, 윤 의원은 주택기금을 지원할 수 있는 보완책을 두며 차별화를 보였다.
야당이 대표 발의하며 수면위에 오른 후분양제 도입 이슈는 여당 일각에서도 조기 대선을 앞두고 표심 잡기 차원에서 찬성하는 분위기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소비자 선택권 보호, 건설사 경쟁력 강화, 주택품질 강화를 위해 후분양제 도입을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면서 힘을 싣고 있다.
사실 후분양제 제도 도입 문제는 부동산업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앞서 2003년 참여정부가 후분양제 도입을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걸며 활성화 방안을 추진했지만 5년이 채 못 지난 시점에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 참여정부가 후분양제 도입을 검토했던 건 분양권 전매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가 과도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소비자의 주택선택권을 확대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2003년 11월 정부는 3, 4년 단위로 시기를 구분해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분야까지 후분양제를 정착시킨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초기 선도단계에선 일부 공공물량에 시범적으로 도입하면서 민간부문은 주택기금을 지원키로 했다.
투기수요가 극심했던 재건축단지의 경우 아예 80% 이상 공정을 진행하고 입주자를 모집하도록 법령을 바꿨다. 2007년 이후에는 후분양제 사업자에게 공공택지를 우선공급하겠다는 내용도 당시 로드맵에 포함됐다. 하지만 야심차게 추진한 이 로드맵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서민층 주택수요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 미뤄졌고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아예 폐기됐다. 김승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건설업체의 자금조달 곤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주택시장 침체로 정착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나 업계에서는 최근 다시 논란이 된 후분양제를 의무화할 경우 자금조달 비용이 늘고 그만큼 분양가가 올라 소비자에 전가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주택시장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한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돼 결과적으로 주택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후분양제를 도입한다면 그간 선분양제 시스템에 맞춰져 있던 자금조달 시스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가계부채 문제로 금융조달 자체가 어려운 만큼 채널을 열어주고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부 역할이지 분양제도에 대해 강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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