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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 '해운강국'의 꿈이 악몽으로...'40년 영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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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 '해운강국'의 꿈이 악몽으로...'40년 영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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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법원이 이르면 2일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리고 파산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해운의 자산 매각 절차가 마무리됨에 따라 존립 여부를 판가름하는 마지막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지는 셈이다.


회생절차 폐지는 회생절차 개시 후 기업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법원이 이를 종료하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채권자 의견조회 등 2주간의 항고기간을 거쳐 이르면 오는 17일께 파산 선고를 내릴 전망이다. 법원이 파산 선고 뒤 파산관재인을 선임하면 회사 전체의 영업은 중단되며 청산 절차가 시작된다.

이로써 부동의 국내 1위, 한때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은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해운강국의 꿈을 상징했던 '한진'이라는 이름도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1977년 5월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선사로 설립된 국적 선사 한진해운은 8년 장기 불황의 그늘에서 전임 회장의 경영실패와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로 내몰렸다가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끊기며 지난 9월초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진해운은 대한민국 해운업의 모태이며, 터전이며 산역사나 다름없었다. 1978년 10월 중동항로를 개척했고, 1979년 3월 북미서안항로를 개설, 1983년 9월 북미서안항로 주간 정요일 서비스를 개시하며 한국 컨테이너 해운업계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1988년 대한선주를 합병하면서 종합해운으로 변모했고, 1992년 국내 최초의 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한진오사카호를 띄우며 새역사를 만들었다. 1986년에 개장한 미국 시애틀 전용터미널에 이어 2001년 미국 롱비치터미널을 세우는 등 해외터미널을 개장하며 사세를 키워왔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장기불황이 찾아오면서 위기가 드러난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 경기침체가 가속화됨에 따라 2009년 전세계 해상 물동량은 전년대비 4.5% 떨어졌다. 전례없는 낙폭이었다. 이후 전세계 해상 물동량과 운임은 긴 하락세를 그려왔고, 해운산업 전체가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


결국 고(故)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이 2014년 한진해운에서 손을 떼고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깊어진 불황에 계속되는 운임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장기용선 선박의 이자부담으로 부채는 불어갔다. 조 회장은 에쓰오일 보유지분 매각과 대한항공 유상증자 등을 통해 2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누적 결손금이 2조5000억원에 이르자 결국 올 초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지만 정부의 자금 지원 중단 결정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이후 영업망이 모두 붕괴되고 주요 자산 매각이 모두 마무리된 만큼 법원의 파산 선고와 채무 변제 뒤 한진해운이라는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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