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드디어 기자들 앞에 섰다.
많은 기대를 받은 기자회견이었지만 그 내용은 형편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한 해명만 늘어 놓다 CNN기자에게는 막말까지 했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다가올 4년간의 트럼프 시대에 대한 식견은 없었다. 현장의 기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본 전세계 시청자들이 당황할 만큼 수준 이하의 회견이었다. 일자리 창출가(job producer)가 되겠다는 호언 장담 역시 국경세 부과를 앞세운 기업 협박으로 들렸다.
하루 전 퇴임을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시간 동안의 품격 있는 고별연설 도중 4년 더를 외치는 청중들을 향해 "예스 위 캔(Yes we can)"이라며 자신의 이상이 지속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감동을 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트럼프는 20일 열리는 취임식이 기대 이상일 것이라며 공백포함 단 104글자의 트위터로 맞섰다.
그 동안 트럼프의 소통경로는 두 가지였다. 글자수가 140자로 제한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트위터를 이용하거나 자기를 만나러 온 이(마윈, 손정의)를 배웅하면서 기자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는 방식이었다.
전세계 정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은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무작정 엿가락 처럼 발언 시기를 늦추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3일 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당선 확정 2일 만에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국정 철학을 선보였다.
트럼프는 연설이나 기자회견 보다는 트위터를 통한 기업과의 협상이나 러시아 추문 해명에 주력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가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이다. 취임 이후에도 당선자가 트위터를 사용할 것은 분명하다. 전 세계 열강, 동맹과의 대화도 기업처럼 추진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문제는 트럼프의 SNS가 소통이 아닌 본인의 주장만 늘어 놓고 상대방을 압박하는 데 이용된다는 점이다. 일방적인 정보 제공으로 여론 조작에 나선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런 행동이 초강대국 지도자의 책임 있는 행동은 분명 아니다.
정치에 필요한 두 가지 덕목이 있다. 이념과 실행력이다. 어느 하나가 없어도 좋은 정치는 없다. 떠나가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은 자신의 이념을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8년의 임기를 온전히 노력했다는 배경이 있다. 공화당의 반대에도 심각한 의료 문제 개혁을 위해 오바마 케어를 만들었다. 보호무역이 당론인 민주당 소속임에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 한 것도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당파를 떠나 노력한 그의 실행력이 돋보이는 사례이다.
트럼프는 어떠한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구호가 그를 당선시켰지만 이는 이념으로 보기는 어렵다. 협박을 앞세운 실행력만 돋보인다. 불과 3일뒤 시작될 트럼프 시대가 두렵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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