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취임을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유럽 동맹들을 뒤흔들었다. 그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를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적국으로 간주해온 러시아에 대해선 각별한 호의를 드러내 전 세계를 어리둥절케 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래전부터 나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왔다"면서 "그중 첫 번째는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점이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두 번째로 큰 문제는 회원국들이 공평한 분담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에 매우 불공평하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 역대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러시아 견제 등을 위해 나토를 최우선 안보 동맹체로 삼아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의 발언은 미국의 동맹 전략의 근간과 유럽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EU는 물론 그 맹주인 독일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는 인터뷰 도중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가운데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글쎄, 나는 두 사람 모두를 신뢰하면서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지속 기간을 보자. 오래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세계 2차 세계 대전이후 유럽의 맹방을 자임해왔던 독일의 총리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이밖에 "EU가 독일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거나 "독일이 EU 회원국들에 대규모 난민 수용을 강요했다"는 비판도 내놓았다. 이어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은 아주 현명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같은 발언이 공개되자 미국 안팎에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CNN 방송 인터뷰를 통해 "유럽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 중 한 명이자 우리가 함께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에 대해 말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면서 "그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언급하는 것을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CNN은 트럼프 당선자의 이같은 행보 때문에 '트럼프는 푸틴의 푸들(애완견)'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 동맹국 정상들도 트럼프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뉴질랜드 총리와의 기자회견 도중 "EU는 경제력과 효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테러리즘 등 다른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다"면서 "나는 (EU) 회원국이 강고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낙관적으로 함께 일해 나가는 것에 지금처럼 앞으로도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EU는 외부 충고가 필요없다"며 트럼프 당선자의 주장을 일축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어 "유럽은 언제나 대서양 건너편(미국)의 협력을 추구하겠지만 유럽의 이익과 가치에 기반을 둬 그 길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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