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없소?”
가수 한영애의 노래가 아니다. 이달 20일 예정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축가를 불러줄 가수를 찾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야기이다. 제45대 미국대통령 취임식 관계자들은 행사가 3일 앞으로 다가 왔지만 축가를 요청하는 가수들마다 ‘노’를 연발하고 있어 애를 태우고 있다. 새 내각을 구성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며 투덜대고 있다니 그 고충을 가늠할 수 있다.
엘튼 존, 진 시먼스, 셀린 디옹, 안드레아 보첼리 등 섭외를 받은 가수들 모두가 개인 스케줄 등을 핑계로 불참을 통보했다. 영국의 가수 겸 영화배우 샬럿 처치는 아예 “독재자의 취임식에서 축가를 부를 수 없다”며 대놓고 비난했다. 영국의 음악 경연대회 엑스팩터에서 스타로 떠오른 레베카 퍼거슨의 수락 조건이 눈에 띈다. 흑백 혼혈인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에 취임식 축하 공연에서 ‘스트레인지 프룻(Strange Fruit)'이란 노래를 불러도 된다면 초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재즈의 영혼과도 같은 목소리를 지닌 빌리 홀리데이가 불러서 유명한 이 곡은 193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부지방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나무에 매달린 검은 몸뚱이는 남부의 산들바람에 흔들려요/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아름다운 남부의 목가적 풍경/튀어나온 눈 찌그러진 입술/달콤하고 상쾌한 목련의 향기/그때 어디선가 풍겨오는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후략)
1930년 미국 인디애나 주 매리온에서 두 명의 흑인 청년이 강도·강간·살인 혐의로 체포 되었다. 이들이 백인 남성을 살해하고 그의 애인을 강간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 성난 백인들이 감옥으로 몰려가 흑인 청년을 끌어내 린치를 가한 후 나무에 목 매달아 죽였다. 나중에 사망한 남성의 애인이 강간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흑인 청년 두 명은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나무에 매달린 두 흑인 청년의 시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노래를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르겠다니. 이것은 마치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양희은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르거나 안치환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재즈는 본디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온 흑인의 음악이다. 노예의 삶을 살던 아프로아메리칸이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군 군악대가 던져준 악기를 연주하면서 생겨난 음악이다. 흑인 특유의 리듬 감각과 유럽의 클래식이 결합되어 음악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형태의 예술이 탄생한 것이다. 억압받는 사람의 소리이기에 재즈의 밑바닥에는 기본적으로 한이 서려 있으며 저항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트럼프의 취임식을 준비하는 사람들, 번지수를 잘 못 짚어도 단단히 잘 못 짚었다.)
재즈 음악인을 소재로 한 영화 ‘라라 랜드’의 흥행 성공 덕분인지 재즈가 다시 한국에서 조명 받고 있다. 음원 판매를 제외한 사운드트랙 음반 판매만 2만 장을 넘어섰다. 방송에서는 재즈 전문 채널이 문을 열었고 2017 평창 음악제에는 재즈가 주인공이다. 자고나면 생기는 커피전문점의 실내 음악은 거의 모두 재즈이며 고급 쇼핑몰의 실내 음악으로,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보다 감상자의 숫자가 훨씬 적은 이 소수의 음악이 100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음악을 듣는데 뿌리니 영혼이니 골치 아프게 따져가며 들어야하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