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쌀 인식개선·소비촉진 캠페인
쌀 활용 메뉴 개발 지원·멘토링 '라이스랩'
떡케이크·떡초콜릿 등 탄생
1인당 쌀소비 45년 만에 반토막
비만 주범 오해받지만 단백질 비타민 풍부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우리에게 '밥심'을 상징해 왔던 쌀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밥공기에 가득 담은 고봉밥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을 상징했다. 수많은 아들, 딸들이 다시 일터와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먹을거리가 늘면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다. 일선 식당에서 내놓은 주먹만한 공깃밥도 남길 정도로 풍족한 삶이 찾아온 탓이다. 품종개량 등으로 최근 몇 년간 쌀농사까지 풍년이 들면서 쌀이 남아도는,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던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정부는 쌀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고품질의 다수확 품종 개발·보급으로 이어져 최근 논 10a(약 300평)당 쌀 생산량이 570㎏이 넘는 품종도 등장했다. 하지만 쌀 소비는 앞으로도 계속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 1명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에서 지난해 62.9㎏으로 45년 만에 절반 넘게 급감했다. 1인당 하루 평균 소비량 역시 2006년 216g에서 2014년 178.2g으로 감소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향후 쌀 소비는 더욱 가파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시장 격리 규모를 늘리거나 농가의 타 작물 전환 지원, 사료용 공급 확대, 쌀값 하락에 따른 직불금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쌀 공급과잉이란 구조적인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변화하는 식생활 문화에 맞춰 쌀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서구화된 식생활과 쌀 대체재 다양화 등이 영향을 끼치는 가운데 쌀 소비가 가장 적은 연령대는 '2030(20~30대)'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잘못된 다이어트 상식이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쌀은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풍부해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침밥 먹기나 쌀 가공 디저트 개발처럼 달라진 식생활 문화에 초점을 맞춘 쌀 소비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다. 또 탄수화물을 비만의 주범으로 치부하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2011년 시작한 '미(米)라클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올해로 3회째인 이 사업은 '쌀에 맛있는 기적을 더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쌀 요리를 새롭게 개발해 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소비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회 행사 때는 2명의 요리사와 젊은이들이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는 쌀 요리 메뉴를 개발해 팝업스토어에서 소비자의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쿡방(요리하는 방송)' 열풍을 활용했다. 김호윤, 이원일, 루이강, 최현석 등 스타셰프가 개발한 쌀 디저트 레시피를 방송을 통해 공개하고, 오프라인에선 대국민 시식회를 열었다.
올해에는 밥보다 디저트나 간식을 선호하는 젊은 층의 입맛을 반영해 쌀로 고급스러운 디저트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디저트 응모작으로 230여점이 몰렸고, 이 중 공정한 심사를 통해 최종 우승자 3팀을 가렸다.
블루베리 떡케이크와 파베 떡 초콜릿 제품인 '일떡이조', 공주 밤과 쌀로 만든 파운드케이크 '밤이 쌀쌀해요', 채식주의자나 아토피 등 음식에 민감한 이들을 위한 초코케이크 '쉿! 시크릿 쇼콜라'였다.
심사와 멘토링에는 SPC삼립과 탐앤탐스, 풀무원, 해태제과 등 식품기업 연구개발(R&D)팀이 참여했다. 이들은 요리법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에서 제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일떡이조를 만든 김일화·이화 자매는 SPC삼립의 떡 전문점 '빚은'에서 멘토링을 받았다. 이를 통해 기존 쌀케이크의 퍽퍽한 식감을 개선했고, 파베 떡 초콜릿은 시중에서 당장 판매해도 될 정도의 높은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일떡이조 블루베리 떡케이크는 빚은을 통해 지난 17일부터 크리스마스 시즌메뉴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회사 측은 판매 매장을 늘려갈 예정이다. 밤이 쌀쌀해요 역시 커피전문점 브랜드인 '탐앤탐스'를 통해 제품 양산을 계획 중이다. 공주시 청년사업소에서 쌀빵 전문점 형태로 창업에도 성공해 자체 매장에서 올 연말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서울 마포구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수상작들을 선보이는 미라클 무료 시식회가 열렸다. 시식회에 참가한 윤인정씨는 “디저트의 주재료가 쌀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면서 “젊은 세대의 취향에 딱 맞는 맛이어서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윤씨는 “앞으로 건강까지 챙겨 주는 쌀 디저트를 자주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도 취임 이후 쌀 소비 확대를 위한 정책에 고삐를 죄고 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당면한 쌀 가격안정을 위한 수급안정 대책을 역점 추진하겠다”며 “가공수요 확대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쌀 가공 업계는 물론 식품기업들과도 만남을 확대하며 쌀 소비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쌀 가공 업계 간담회에서 김 장관은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가공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가공산업의 경쟁력 강화, 소비 확대를 위한 협력을 당부했다. 농식품부는 간담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향후 쌀 가공제품을 활용한 아침 간편식시장을 확대할 방침이다. 프랜차이즈 육성 등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설빙, SPC삼립, 탐앤탐스, 풀무원, 해태제과 등 기업들과 만나 쌀 가공식품 프랜차이즈 육성 등 정부의 쌀 소비 정책 추진 방향을 공유했다.
농식품부는 미(米)라클 프로젝트 등을 통해 시범적으로 추진해 온 쌀 제품 개발, 전문가 멘토링 및 식품기업 협력을 '라이스 랩(Rice Lab)' 등을 통해 활성화할 방침이다. 외식 분야의 청년 창업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굿모닝 라이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침 식사 결식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점에 착안한 이 캠페인은 직장인에게 쌀로 만든 건강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도록 했다.
지난 8일에는 김 장관이 직접 문구류 전문 업체인 '알파'를 방문해 1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쌀 간편식을 먹었다. 이들에게 아침 식사를 챙겨 먹고, 쌀 식품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아침 식사 결식률은 2005년 19.9%에서 2014년 23.8%로 최근 10년간 약 6.2%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아침 식사 결식률은 40.3%, 30~40대는 27.8%에 달했다.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관련 기관과 식품유통기업 등과 협력해 쌀로 만든 간편식 아침메뉴를 다양화하고, 할인 판매를 실시할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당장 밥을 적게 먹는 식습관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입맛에 맞춘 쌀 가공식품 개발과 밥의 장점을 알리는 것을 통해 쌀 소비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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