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삼성전자가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진입장벽이 높은 전장사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9조원 가량에 미국 오디오·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하며 단숨에 전장시장 글로벌 플레이어로 올라선 것이다.
삼성은 이미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계열사를 중심으로 전장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그림을 그려왔다. 차량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각종 부품 등을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을 지속했다. BMW 등 자동차 업체와 협업도 시작했으며, CES 등 글로벌 전시회에서는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를 주제로 전시장 한 켠에 자동차를 전시하고 시연하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자동차 전장사업은 전통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자동차는 한 번 구입하면 10년 가량은 사용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안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제품이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 온 1차협력사(Tier 1)들과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이 9조원 씩이나 투자해 하만을 인수한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래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려면 전장사업에서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을 과감하게 인수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만은 미래 자동차에 필요한 부분들을 사업 영역으로 모두 커버하고 있다. 스피커에서부터 내장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커넥티비티 세이프티, 보안 등으로 사실상 전장 사업 전 영역에 참여하고 있다. 매출의 65%가 전장 부문에서 나온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하만의 인포테인먼트 시장 점유율 24%로 글로벌 시장 1위, 텔레매틱스는 점유율 10%로 세계 2위의 선도업체다. 하만은 특히 커넥티드카와 카오디오 사업에서 연매출의 약 6배에 달하는 240억달러(28조원) 규모의 수주잔액을 보유할 만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커넥티드카는 차량의 특성상 기능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주요 차량 브랜드의 80%가 하만 제품을 쓰고 있어서 성장 가능성도 크다.
각종 부품 뿐 아니라 삼성이 관심을 갖고 키우고 있는 인공지능(AI)과의 연관성도 높다. 하만은 최근 미국 최대 통신회사 AT&T와 커넥티드카 연구에 나섰고 에어비퀴티와도 협업하고 있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와는 음성인식 스피커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인도에는 라이프스타일 연구 소프트웨어 센터를 짓는 등 미래 사업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삼성이 최근 인수한 인공지능 음성인식 솔루션업체 '비브랩스'의 기술까지 더해지면 시너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이 목소리로 자동차 안에서 각종 기술을 제어하고, 스마트폰과 각종 전자기기와 연동해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추가 M&A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전장사업,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 글로벌 전자업계가 노리고 있는 이 시장에선 '속도'가 중요한 만큼, 방향을 정했으면 빠르게 투자하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애플, 구글 등 삼성의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모두 사물인터넷과 자동차와의 연결성 등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삼성 역시 관련 M&A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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