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한진주 기자] 모바일 시대 이후를 준비하는 구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에 주력했던 구글이 스마트폰, 가상현실(VR) 기기,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하드웨어 부문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안드로이드 하드웨어'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와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일(현지시간) 구글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 행사 '메이드 바이 구글'에서 새로운 스마트폰 '픽셀' '픽셀XL'과 VR 기기 '데이드림뷰', AI 스피커 '구글 홈' 등을 공개했다.
픽셀은 사실상 첫 번째 '구글폰'이다. 구글이 그간 선보였던 '넥서스'가 하드웨어 역량을 갖춘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픽셀은 구글이 직접 설계·제작하고 대만 업체인 HTC는 주문자생산(OEM) 형식으로 생산만 담당했다. 이는 애플 아이폰의 제작 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5인치 픽셀과 5.5인치 픽셀XL에는 구글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인 7.1 '누가'가 적용됐으며,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퀄컴 스냅드래곤 821이 탑재됐다. 4GB 램과 후면 1200만화소·전면 800만화소 카메라도 적용됐다. 애플의 '시리'와 같은 구글의 음성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도 탑재됐다. 구글이 이와 같은 '안드로이드 프리미엄폰'을 전격 출시하면서 그간 긴밀하게 협력해 온 '안드로이드폰 1인자' 삼성전자와 정면대결이 불가피해졌다.
구글은 이날 VR 기기 데이드림뷰와 AI 스피커 구글 홈도 함께 발표했다. 하드웨어 영역을 강화해 애플에 대적하는 구글만의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데이드림뷰는 스마트폰을 끼워서 보는 모바일용 VR 헤드셋이며, 팔 동작을 인식하는 컨트롤러와 세트다. 데이드림뷰는 시장을 선점한 삼성 기어VR와의 정면대결을 위해 가격을 기어VR보다 20달러 낮은 79달러로 책정했다. 지난 5월 안드로이드 기반 모바일 VR 플랫폼 '데이드림'을 발표한 구글은 VR 하드웨어까지 포괄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셈이다. AI 스피커 구글 홈은 사람의 음성명령을 인식해 통신이 가능한 조명, 온도조절기 등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제어하고 노래도 실행시킬 수 있다.
업계에서는 구글의 이 같은 하드웨어 강화 움직임이 그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다져온 삼성전자와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스마트폰시장에서 안드로이드 OS는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독보적인 1위는 삼성전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구글의 하드웨어 제품 도전에 대해 "삼성·애플로 양분된 스마트폰시장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2분기 기준 전체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2.7%, 애플은 11.8%의 점유율을 차지, 스마트폰 양강 체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킨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안드로이드를 비롯해 각종 구글의 서비스를 통해 이미 모바일 사용자들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관여하고 있는 구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포스트 모바일' 시대에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사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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