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66대 국무장관을 지낸 최초의 흑인 여성이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두 명의 대통령과 함께 일한 그녀는 항상 최연소, 첫 여성, 첫 흑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닐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면서 '철의 목련’으로 불린 라이스도 네오콘 신보수주의자의 견제와 모욕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모욕의 선봉에는 네오콘의 거두 도널드 럼스펠트 국방장관이 있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라이스를 괴롭혔다. 라이스의 전화 안 받기, 사무실에 있으면서 없는 채 하기, 말 못들은 척 무시하기, 면전에서 면박 주기 등으로 라이스를 괴롭혔다. 마침내 라이스는 회의 석상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2004년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내 정치적 불안정과 관타나모 수용소의 수감자 고문 폭로로 고심하고 있었다. 국가 안보 보좌관 라이스는 행정부 내 최고 관리들을 불러 모아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럼스펠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럼스펠드는 회의에 폴 울포위츠 부장관을 보냈다. 두 번째 회의를 소집했을 때도 럼스펠드가 참석하지 않자 조지 테넷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화가 나 라이스가 앉으라고 명령했음에도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빌어먹을’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라이스는 눈물을 흘리며 회의를 중단하고 만다.
이렇게 인간성이 나쁜 럼스펠트지만 그럼에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위대한 업적이 있다. 그것은 미군의 ‘충격적인’ 혁신이다. 럼스펠트는 2차 대전 이후 확립된 전통적인 미군의 전쟁 수행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전까지 미군의 전쟁 수행 방식은 육군을 중심으로 해군과 공군이 보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럼스펠트는 거꾸로 공군을 중심으로 적을 공격하고 육군을 청소부 역할로 전락시켰다. 그가 강조한 것은 군의 문민 통제(civilian control)와 ‘이빨 대 꼬리 비율’(the teeth-to-tail ratio)’이다. 문민 통제는 군에 대한 민간의 확고한 통제를 의미하고, 이빨(전투병력) 대 꼬리(지원병력) 비율은 이빨을 강화하고 꼬리를 최소화하자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이빨은 공군이고 꼬리는 육군이 된다.
이런 혁신의 결과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의 게임화다.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저 머나먼 중동에서 미 공군 전투기가 바그다드를 공습하는 장면을 시청했다. 공습하는 전투기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목표물인 건물과 인간이 살해되는 장면을 슈팅게임 하듯 지켜볼 수 있었다. 전쟁 시작 20일 만에 바그다드가 점령되었고, 미군 전사자는 공식적 전쟁 기간인 2003년 3월 이후 두 달 간 139명에 불과했다. 미군이 역사상 최초로 패배한 베트남전에서 미군 전사자는 5만 7939명, 부상자 75만 2000명에 이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 지사의 모병제 주장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모병제도, 징병제도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핵심은 군 전략의 혁신이다. 현대전은 기술전이고 첨단무기전이다. 미래의 전쟁은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드론(무인비행기)과 무인전차가 적을 공격하고, AI(인공지능)가 장착된 로봇 솔저가 진격해 오는 판국에 ‘소총 들고 돌격 앞으로’ 라는 것은 코미디에나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20일 만에 미군에 패한 이라크는 무려 100만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항상 혁신에는 기득권자의 저항이 따르는 법이다. 군 전략의 혁신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손발이 잘리는 육군의 저항이다. 미 육군과 국방성도 럼스펠트의 개혁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 저항은 토머스 화이트 미 육군장관과 에릭 신세키 참모총장이 잘린 후에야 멈추었다. 럼스펠트는 부도덕한 전쟁을 일으킨 악당이지만 이런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분쇄한 혁신가(?)이기도 하다. 어쩌면 악당이었기에 혁신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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