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오늘 시행에 들어갔다.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등을 보면 그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아주 간단하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공무원)들은 ‘자기 돈으로 밥 먹고 골프 치라’는 것이다. 자기 지갑을 열 생각은 안하고 부정청탁을 하는 기업의 법인카드를 어떻게 이용하면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을까를 궁리해서 그럴 따름이다.
기업의 부정한 청탁을 공무원들이 '맨 입'에 들어주지는 않을 터. 하여 비싼 식사와 선물과 금품 등이 제공됐을 것이다. 그 결과 부정한 청탁을 해서 이권을 얻은 자와 그렇지 아니한 기업 간에 공정한 경쟁이 무너진다. 청탁을 받은 공무원이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가장 깨끗한 상태)에 56점이라고 한다. 이는 조사 대상 168개국 중 37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서는 27위다. 우리나라 경제실력이 세계 10위권 정도임을 감안하면 창피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개선돼야 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경제 활성화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기업이 지출한 총 접대비가 약 10조원인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식당이나 골프장 등 일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OECD가 올해 발표한 '뇌물척결보고서'에 따르면 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청렴한 나라보다 해외직접투자(FDI) 유치 확률이 15% 낮다고 한다. 누구인들 뇌물이 횡횡하는 국가에 투자하려고 들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비윤리적인 부패 영역과 부패 유발적 사회문화는 축소하고 개선해야 한다. 일부 식당과 골프장 때문에 국가 전체가 부패의 늪에서 더 이상 헤맬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 현행 세법이 기업이 지출한 접대비 중 일정 금액에 대해 비용(손금·損金)으로 인정해준다. 예를 들면 매출액이 1조원인 법인의 경우 접대비 3억4500만원(6000만원 + 500억 원 초과금액의 1만분의 3)까지는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해준다. 이를 초과한 접대비는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아 법인세를 낸다.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는 접대비 3억45000만원에 상당하는 법인세는 약 7600만원이다. 결국 국가가 접대비를 쓴 기업에 7600만원을 세금으로 보조해주는 셈이다.
세법은 접대비를 '교제비, 사례금, 그 밖의 어떤 명목이든 상관없이 이와 유사한 성질의 비용으로서 법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지출한 금액'이라고 정의한다(법인세법 제25조). 이와 달리 김영란법 제8조는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세법은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접대비라야 세금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대가성 금품을 받으면 안 되며 받을 경우 처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세금 보조를 받는 접대비 중 상당액은 직무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은 공법(公法)체계의 모순은 조속히 고쳐야 마땅하다. 특히 사실상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효과가 있는 세법상 접대비 손금산입 규정은 삭제돼야 한다. 그래야 접대비를 아낀 회사와 펑펑 쓴 회사 간에 조세부담이 공평해지지 않겠는가. 선진국 대부분도 이렇게 하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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