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나합'이야기 - 결국 친구에게 벼슬을 주도록 만들었으니, 김좌근은 나쁜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판서 김병기가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절을 올린다. 그때 놀란 박정삼이 일어나 맞절을 하려 하자, 김좌근이 허리춤을 잡아 주저앉히면서 “그냥 받게나”라고 속삭인다.
“자, 판서. 장성부사에게 당장 편지를 쓰시오. 이 사람의 편의를 좀 봐주도록 말이오.”
그러자 김병기는 난감한 표정으로 글을 쓴다. 김좌근은 박정삼에게 서찰을 쥐어주며 “이젠 해결됐으니 걱정말고 다리 쭉 뻗고 잠 좀 자게나”라고 말한다. 그런데 박정삼이 문 밖으로 나가자 김병기의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편지를 빼앗고는 그를 혼쭐낸다.
이후 김좌근은 칭병(稱病)을 하면서 방문을 걸고는 자리에 드러누워버린다. 아들 김병기가 놀라서 문 밖에서 석고대죄를 했다. 방 안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비의 옛친구를 능멸한 것은 나를 능멸한 것이나 마찬가지. 내가 자식놈에게 패대기를 당했으니 드러눕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후 김좌근은 아예 박정삼을 장성부사로 임명해 내려보낸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이 된다. 분명 ‘권력’을 사용(私用)하는 나쁜 자임에 분명하지만, 어쩐지 왜곡된 세상에서 바닥에 있는 사람을 감싸는 따뜻한 면모가 짚이기도 한다. 인간은 그때그때마다 변하고 바뀌는 세상사에 얽매여 있고 은원(恩怨)의 관계들로 뒤엉켜 있으니, 백년도 더 된 옛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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