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황준호 특파원] 911테러에 얽힌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 미스터리가 15년 만에 풀렸다.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 40분께 항공기 한 대가 뉴욕 로어 맨해튼에 위치한 월드트레이드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했다. 20여분 후 항공기 한 대가 다시 월드트레이드센터 남쪽 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생존자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항공기 자살 테러는 자욱한 연기와 죽음의 재만을 남겼다.
세 명의 소방관이었다. 빌리 에이젠그레인, 조지 존슨, 댄 맥윌리엄스는 검게 그을린 얼굴과 온몸에 재를 뒤집어 쓴 채, 무너진 국기 게양대 앞에 섰다. 이들은 근처 요트에서 공수한 성조기를 게양했다.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지역지 레코드에서 근무했던 사진작가 토마스. E. 프랭클린은 사각 프레임 안에 이 모습을 담았다.
이 사진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가 이오지마 전투에서 성조기 게양하는 장면과 비견되며, 끝없는 절망 속에서도 모든 것을 이겨내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이후 911테러 성조기는 반테러와 희생자 추모의 의미를 담아 뉴욕 양키스 홈구장에 게양됐다. 또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 일당인 알 카에다 등을 소탕하러 떠나는 항공모함 루즈벨트 호에서도 나부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라운드 제로에 펄럭이던 성조기가 사라졌단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음해 성조기가 세계 투어를 마치고 뉴욕시청으로 돌아오자,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돌아온 성조기는 가로 8피트, 세로 5피트 크기로, 조지 E. 퍼타키 전 뉴욕 주지사와 루돌프 W.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마이클 R.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사인이 담겨 있었다.
이는 가로 5피트, 세로 3피트 크기의 911테러 성조기와는 전혀 다른 성조기였다. 가짜 희망의 상징이 전 세계를 돌아다닌 셈이다.
도난당한 미국의 희망이 세상에 재조명된 것은 10여년이 지난 후였다.
2013년 4월 미 뉴스 채널 CNN은 더 플래그(The Flag)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911테러 성조기 미스터리에 대해 방영했다. 이어 '성조기를 찾는다'는 공고성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1년이 지난 2014년 10월, 히스토리 채널의 스핀오프 채널인 H2는 '브래드 멜처의 잃어버린 역사'를 통해 잃어버린 성조기에 대해 다시 다뤘다.
방송이 나간 뒤 4일 후였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북쪽에 위치한 에버렛의 한 소방서에 한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브라이언'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비닐 봉지에 담긴 국기를 가리키며 "내가 방송에 나온 국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퇴역한 해병 출신으로 중동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성조기를 국립 해양대기청의 한 직원으로부터 받았으며, 이 직원은 911테러 당시 희생당한 한 소방관의 미망인으로부터 성조기를 받았다고 전했다. 911테러 당시 343명의 소방관이 사망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후 자취를 감췄다. 경찰이 그의 몽타주를 신문에 싣는 등 그를 찾기 위한 작업에 나섰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뉴욕타임즈는 전직 경찰의 발언을 통해 "해당 성조기는 장례식 때 쓰는 것과 달리, 로프 등이 달린 것으로 미망인이 건넸다는 부분에 있어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911테러 성조기를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말한 경로는 사실과 다를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그가 건넨 성조기는 911테러 성조기가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주 패트롤 크라임 랩의 법의학자 빌 쉬넥은 "성조기 내 먼지와 911테러 이후 수집한 먼지를 비교해본 결과 같은 성분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또 사진 속 성조기와 같은 크기와 재질로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911테러 성조기는 현재 뉴욕 국립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뉴욕 황준호 특파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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