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나합'스토리 - 나주서 경국지색이 올라왔구나… 홍어회도 서울서 먹히니 저 또한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중국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있었다더니, 거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로구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저는 나주에서 올라온 시골뜨기 지홍이라 하옵니다.”
“지홍(只洪)이라. 어찌 사내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오래전 호남에 계시던 척재(이서구) 어른께서 친히 지어주신 이름이옵니다.”
“그게 무슨 뜻이더냐?”
“다만 홍어처럼 살라는 뜻이옵니다.”
“홍어처럼 살라? 어떻게 살라는 말이더냐?”
“홍어처럼 영산강을 떠나지 말고 가만히 살다 가라는 뜻이옵니다.”
“흠.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그 강을 떠나 이까지 헤엄쳐 왔단 말이냐?”
“척재 어른은 그렇게 지었으되, 홍어회 또한 나주를 떠나 이렇듯 서울에서 뭇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니, 홍어처럼 살려면 저 또한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핫핫. 정말 그럴 듯한 변론이로다. 그러면 ‘지홍’이란 말도 오직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는 뜻이 되겠구나.”
“다만 홍어처럼 깊이 익힌 심미(深味)를 콧 속에 탁 터뜨리는 그 기운은 잊지 않으려 하옵니다.”
“허허. 그렇구나. 나주는 천하의 변방이라 인물이 없는 줄 알았더니 여기 여사(女士, 여자 선비) 하나가 있었구나.”
“과분한 말씀이옵니다. 하지만 나주를 그리 낮춰 말씀하시지는 말아주십시오. 이곳은 고려 성종 때(998년)부터 12목(牧, 요즘의 광역자치단체) 중의 하나였고 호남 제일 고을입니다. 금성산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영산강이 흘러 이곳 한양과 지세가 닮았습니다. 북악산이 금성산이고 한강이 영산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작은 한양(小京)이라 불리던 곳이옵니다. 한글을 만든 보한재(保閑齋, 신숙주) 어른과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선생, 그리고 시인 백호(白湖, 임제) 어른이 나신 곳이지요.”
“허허, 그랬더냐? 대단한 곳이구나.”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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