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나합'스토리 - 김좌근 과거합격 파티를 나주헌에서 열었는데...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1838년(헌종4년) 어느 날 기회가 왔다.
김좌근이 정시(庭試)문과 병과로 급제를 한 것이다. 이때가 나이 41세 때이니 안동김문의 핵심인 그의 과거시험 합격에 얽혔을 비화가 ‘안봐도 비디오’이다.
18세기 과거시험 현장을 르포로 기록한 성호 이익(1681-1763)은, 협책(시험장에 책 반입) 금지령은 이미 깨졌고 시험을 보는 사람 중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는 이는 열에 한명 뿐이요 나머지는 모두 접군(接軍)이었다고 폭로하고 있다.
접군은 뭘 했는가? 답안지를 작성해주는 거벽(巨擘), 글씨를 써주는 사수(寫手), 앞자리를 차지하는 줄서기꾼까지 공동 작전으로 세도가를 등용시킨 것이다. 굳이 김좌근이 그렇게 합격했다고 못박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하튼 어렵사리 턱걸이한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시험에 붙고나니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오래 전부터 한번 가야겠다고 벼르던 나주헌으로 벗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부용당 위에 부용이 서니
사람 부용(연꽃)이 꽃 부용보다 낫네
芙蓉當上芙蓉立
人芙蓉勝花芙蓉
부용당상부용립
인부용승화부용
김좌근은 연꽃이 화사한 연못 위에 있는 나주헌 주련의 시를 읽고 놀랐다.
안동김씨의 풍류객이며 봉조하(조선시대 전직 관원을 예우 차원에서, 70세로 퇴임한 종이품(從二品) 이상의 관리에게 특별히 내린 벼슬)를 지낸 김이양(1755-1845)대감의 소실로 들인 기생 김부용의 시였기 때문이다.
김좌근은 당시 한양의 일등 미색이라고 손꼽히던 지홍이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필’이 지르르 몰려왔다.
남도의 홍어요리가 푸짐한 주안상 앞에 나붓나붓 나비걸음으로 지홍이가 와서 눈을 깔고 앉는다. 18세, 터질 듯이 피어오른 절정의 아름다움이 현기증을 느끼게 할 만큼 놀라웠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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