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김영란법 성공의 조건

시계아이콘01분 40초 소요

[충무로에서]김영란법 성공의 조건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AD

선량한 정책 의도가 반드시 선량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종종 배우게 된다. 예를 들어 17세기 영국정부는 부자들일수록 창문이 많은 큰 집에 산다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부유세인 '창문세(window tax)'를 신설했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결과를 보니 세금은 잘 걷히지 않고 영국인들의 집에서 창문만 사라지게 됐다. 비슷한 경우가 덴마크의 지방세(fat tax)사건이다. 국민의 47%가 과체중, 13%가 비만인 덴마크에서 정부가 국민적 비만을 줄이겠다며 고지방 식품에 대해 과세를 했더니 국민들이 가까운 이웃 나라로 차를 몰고 가서 휴가도 즐기고 고지방 식품을 잔뜩 사들고 오는 바람에 비만 퇴출이라는 선량한 의도는 사라지고 덴마크 낙농업계의 타격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선량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책이나 제도를 설계할 때 적어도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단기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적·동태적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무위험 재량 거래(arbitrage)나 제도를 우회하는 편법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셋째 법과 제도의 시행에 따른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높지 않게 설계해야 한다. 창문세의 경우 단기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로는 모든 사람들이 창문 수를 줄여버리는 쪽으로 움직였고 지방세의 경우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고지방 식품을 사들고 오는 무위험 재량 거래가 가능했기 때문에 정책이 실패했다.

합헌 판정까지 받아서 곧 시행에 들어가는 김영란 법도 마찬가지다. 직접 관련 당사자라고 해서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할 때 사오는 커피 한 잔까지도 모두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중장기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사가 귀찮아진 선생님들이 학부모 만나는 것을 일체 기피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과연 중장기로 교육에 바람직한 일일까. 또 은밀한 뒷돈 관행이 이 법으로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이 법의 두 번째 문제점은 시행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한 거래비용이 너무 높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도덕법에 가깝다보니 대부분 이 법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이걸 감시하려면 거래비용이 천문학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각종 편법거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잘 설명하기 위하여 조용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를 원한다면 접대받는 사람에게 일단 카드로 식비를 계산하게 한 후 이를 현금으로 보상해주는 편법 등이 동원될 것이다.


편법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은 법, 도덕적 성격이 강한 법이어서 대부분 지키기 어렵고 이걸 일일이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법, 그런데도 경찰이나 검찰이나 사정당국이 특정인이나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재량적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은 법은 의도가 암만 좋아도 선량한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국회와 정부는 김영란법 시행과정에서 이 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핵심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거액을 수수했는데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해 기소하지 못하는 것이나 고가의 청탁성 선물 관행을 뿌리 뽑는데 법의 목적과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식사비가 3만원인지 아닌지, 학부모가 교사에게 사들고 간 커피 한잔이 위법인지 아닌지 하는 비현실적 내용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김영란법은 법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표류할 것이다. 김영란법의 도입으로 부당거래가 퇴출돼 사회적 신뢰자본이 높아지기는커녕 기기묘묘한 편법이 등장하고 재량적이고 자의적 판단이 판을 치며 선별적으로 일부 사람들만 범법자로 만드는 이상한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