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설마 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다.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식화한 지 한 달이다. 사드(THAAD)는 북한의 고고도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차원에서 배치하는 것이니까 중국을 잘 설득하면 이해하겠지, 설마 중국이 경제적 보복 조치까지 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장 큰 수출 파트너가 중국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도 가장 큰 수입 파트너, 네 번째 수출 파트너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망이 빗나가고 있다. 설마가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므로 노골적으로 보복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문 방송을 활용하거나 비경제적 분야에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강한 어조의 항의성 칼럼을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8월 말 중국 외교부 후원으로 산둥성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중 학술행사'가 "장소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 6일 중국 베이징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류 스타의 팬미팅도 돌연 취소됐다.
비경제적 조치는 머지않아 경제적 충격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최근 중국 정부가 우리 기업인들의 상용 복수비자 발급요건을 강화했다.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옥죄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파장이 없을 수 없다. 중국 언론들이 "한국 화장품의 유해성이 우려된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 화장품의 중국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한중 관계는 냉탕이다. 2~3년 전에는 온탕이었다. 양국 최고지도자의 오랜 친분을 감안했을 때 역대 최고의 한중관계를 예상했고 실제로 양국 정상이 한국과 중국을 상호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온탕이었다. 천안문 망루에서 양국 정상이 나란히 전승70주년 행사를 치를 때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갑자기 냉탕이 됐다. 한중 관계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사이에 우리 기업인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중국 외교부장이던 저우언라이(주은래)가 1955년에 천명한 '구동존이'(求同存異,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음을 추구한다)와 같은 실용적 외교노선이 아쉽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의 무역보복이 쉽지 않다'는 식으로 우리 측의 희망사항을 발설했다. 이것은 중국의 무역보복을 은근히 부채질하는 듯한, 오해하기 쉬운 발언이었다. 물밑에서 해야 할 얘기를 확성기에 대고 하는 식이었다. 최근 주형환 산업부 장관이 아세안 경제장관 회의에 참석해, 중국의 가오후청 상무부장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비관세 장벽 최소화', '한중 교역 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처럼 한중 양국의 경제부처 장관들을 포함한 고위급 채널들이 총동원돼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자주 만나고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물은 엎질러졌다.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고 단숨에 깔끔하게 해결될 수도 없다.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를 생각하면 느긋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다. 게다가 한중 양국이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서 평행선을 달린다면 해법을 찾기 어렵다. 구동존이의 유연하고 실용적인 노선에 기초해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중국이 G2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 북한의 핵실험 중단이라는 큰 방향전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사드 배치의 문제도 풀고, 한중 경제협력의 미래도 밝게 하는 첩경이라는 공통의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채널과 경제 채널이 오리발처럼 물밑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지 의문이다. 꼿꼿한 장수라고 해서 명분에만 얽매여 움직이지 않는다면 총성 없는 외교 전쟁과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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