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가 어느 날 산둥 성 태산(泰山) 근처를 지나는데 산속에서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연을 알아본 즉 시아버지와 남편, 자식들까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산중을 떠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호랑이보다 가혹한 세금이 더 무서워서(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남아 있다는 기막힌 대답을 들었다. 충격을 받은 공자는 민생을 위한 개혁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한다. 국가 정책의 최우선적 방향으로 백성이 부자가 되는 부민(富民)정책을 부르짖으며 백성으로 하여금 '하게 하거나 또는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 없이' 자유롭게 놓아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말로 하면 규제철폐요, 이를 경제 영역에 대입하면 자유시장경제 이론이다.
두 번째로 손댄 것은 중산층에 대한 '가벼운 세금 정책'이다. 그는 중산층이 두텁고 안정된 중용지국(中庸之國)을 추구했다. 그는 '백성이 가진 것의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불균형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배분하는 '비례적 평등'을 추구했다. '소수에게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만인에게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고 강조하면서. 요즘 말로 소득 재분배요,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자는 수직적 공평을 꾀한 것이다. 현재 날로 확대되는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국가가 고심하는 처방과 유사하다.
공자는 나아가 세 번째로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과감한 복지정책을 주문했다. 그가 꿈꾼 유토피아는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대동(大同)사회'였다. 노후복지는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민생복지, 청년층의 고용안정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계층을 망라해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었다.
부민정책-중용지국-대동사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공자가 일찍이 확립한 '민생 정책 3종 세트'다. 그가 살던 시대는 BC 500년대,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공자의 청년 시절은 혈연사회에서 철기시대로 급속히 변해가는 시기였다. 철기시대는 생산수단의 발달과 함께 농업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자급자족 수준을 넘어서는 증산이 가능하자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가 출현했다.
하지만 사회가 조직화되자 기존의 원시 공동체에서 통용되던 삶의 방정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 고장 난 시계를 고쳐 쓸 것인가, 아니면 버리고 새로 시계를 살 것인가?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름 삶의 해법을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외쳤다고 해서 백가쟁명(百家爭鳴)시대로 부른다.
허례허식의 폐해와 조선시대 당파싸움 탓인지 우리네 머릿속 공자의 이미지는 썩 긍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공자 자신은 민생과 경제에 관한 한 개혁적인 사상가이자 행정 관료였다.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 군주는 개혁주의자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황제를 위한 충성 바치기를 원하지 서민과 중산층의 민생을 위한 개혁 방안에는 마뜩치 않아 했다. 그 바람에 공자의 개혁정책은 노(魯)나라 등에서 국가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아 실행되지 못한 채 역사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 공자가 지금 세계화를 거부한 채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수순을 밟는 영국을 보고 뭐라고 할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Brexit)는 영국과 대륙 사이에 국경선을 부활시킴으로써 물류 이동이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와는 거꾸로 가는 방향이다. 게다가 대륙에서 영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관세가 무차별적으로 부과될 것이다. 이 관세는 수입품 가격 향상으로 이어지고 부자보다는 서민층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공자의 중산층 감세정책과도 다르다.
그렇다면 복지는? 영국행 이민자가 감소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복지비 지출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젊은이들이 대륙에서 직업 구하기가 어려워짐으로써 이들이 벌어들일 소득에서 충당해야 하는 영국의 복지 재원 마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공자의 답은 명확해진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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