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 리스트 분석 결과 세계 추세와 반대…올해 여성 3명 이름 올려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일본의 억만장자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걸까.
영국 런던 소재 자산운용사 아흐마도프앤드컴퍼니가 지난 5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일본의 억만장자 수는 20년 전보다 감소한 반면 이들의 평균 나이는 높아만 가고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와 반대되는 것이다.
아흐마도프의 보고서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1996~2016년)'를 분석해 작성한 것이다.
아흐마도프의 파흐리 아흐마도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포브스와 가진 회견에서 "억만장자에 관한 한 매우 독특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트렌드가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1996년 포브스 리스트에 오른 일본의 억만장자 가운데 올해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은 75%나 된다. 같은 기간 세계 전체로 놓고 보면 평균 50%다.
일본의 억만장자 가운데 부(富)를 물려 받은 이의 비율 역시 확 줄었다. 고율의 상속세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자금조달 통로가 다변화하지 못한데다 자산운용 방식이 적절치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억만장자와 관련해 비관적인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기간 이들의 총자산 규모가 930억달러에서 1250억달러(약 145조5000억원)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억만장자 수는 41명에서 37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억만장자 수는 폭증했다. 1996년 7명에서 올해 31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세계 전체로 보면 424명에서 1810명으로 늘었다. 일본 억만장자들의 평균 연령은 64세에서 67세로 높아졌다. 한국의 경우 되레 68세에서 59세로 떨어졌다. 세계 평균은 63세로 변함이 없었다.
1996년 일본의 여성 억만장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올해 세 명이 포브스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의 억만장자들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년 사이 기술 분야의 억만장자가 폭증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기술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굴욕을 당했다는 점에서 볼 때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샤프는 폭스콘으로 더 잘 알려진 대만의 전자부품 제조업체 혼하이(鴻海)정밀에 지난 3월 매각됐다.
1996년 기술 분야에서 부를 창출한 일본의 억만장자는 8%에 불과했다. 금융 분야의 억만장자 역시 8%였다. 당시 1~3위 분야는 부동산(22%), 레저ㆍ도박(17%), 산업설비(14%) 순이었다. 올해는 기술(27%), 소매(19%), 레저ㆍ도박(14%) 순이다.
이는 일본의 기술산업 발전이 세계와 비슷한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년 사이 글로벌 기술산업에서 이른바 '유니콘(unicornㆍ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웃도는 비상장 신생 기업)'이 많이 늘었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폐쇄형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믹시'의 창업자인 가사하라 겐지(笠原健治), 스마트폰 게임 제조업체 코로프라의 창업자 바바 나루아쓰(馬場功淳)는 개인 지분 덕에 억만장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기술 분야 일본 억만장자들의 평균 연령은 53세로 일본 전체 억만장자들 평균 연령보다 훨씬 낮다.
일본 억만장자들의 특이점은 부를 물려 받은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흐마도프 CEO는 이와 관련해 "적절한 후계자 찾기가 어려운데다 CEO와 기업 소유주의 역할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억만장자들은 한 우물만 판다. 이들 생전에 부의 분산이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흐마도프 CEO는 "부의 원천이 도박처럼 장기 전망과 무관한 부문일 경우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억만장자들이 억만장자 리스트에 머무는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미국 억만장자들은 평균 13년 머무는 한편 일본 억만장자들의 경우 5년에 불과하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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