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 오종탁 기자]지난해 12월부터 추진됐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이 231일만에 최종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 건을 심사한 결과 해당 기업결합이 유료방송시장과 이동통신 도 ·소매시장 등 방송통신시장에서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경쟁제한적 우려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기업결합 자체를 금지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날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주식 취득계약 및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간 합병계약의 이행을 금지했다. 조건을 달아 M&A를 승인하기에는 경쟁 제한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정위는 "해당 기업결합은 기존 방송통신 분야 사례들과는 달리 수평형 ·수직형 기업결합으로 인한 경쟁제한성이 혼재해 있다"며 "행태적 조치나 일부 자산매각 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치유하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 15일 전원회의에서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겠다며 공정위에 승인을 요청한지 228일 만의 불허 결정이다. 공정위의 전원회의 결과가 최종 확인된 18일 기준으로는 231일(7개월 17일) 만이다.
◆미래부, "심사 계속 실익없어"…SKT, "공정위 결정 수용"
공정위의 결정으로 이번 M&A는 불가능해졌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가 남아있으나 공정위 불허 결정으로 두 부처의 심사는 의미가 없어졌다. 이날 미래부는 "공정위의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주식 취득 및 합병 금지 결정으로 이번 기업 결합은 불가능해졌다"며 "따라서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 및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에 따른 우리부의 절차를 계속 진행할 실익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사실상 심사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공정위 입장을 수용했다. CJ헬로비전은 "다각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여운을 남겼으나 행정 소송 등 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날 SK텔레콤은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이번 인수합병의 당위성을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 관계기관을 설득하지 못하고 불허 결정을 받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이번 결정을 수용하며 국내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CJ헬로비전은 "공정위의 이번 심의 결과에 대하여는 존중하나 현재 케이블TV 산업이 처한 현실과 이로 인한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고려할 때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현재는 CJ헬로비전의 내부 안정화를 최우선으로 하여 경영정상화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M&A를 반대했던 KT와 LG유플러스, 방송협회 측은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이날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서 "양사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가져올 방송ㆍ통신 시장의 독과점 심화, 소비자 후생 저해 등을 크게 우려해 이에 이번 인수합병이 금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며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우려를 고려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 사무처가 4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통해 불허 의견을 밝힌 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공정위로부터 '15일 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겠다'는 일정을 통보받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심사보고서 검토 시간이 부족하다며 당초 11일이었던 의견제출 기한을 각각 2주, 4주가량 연장해 달라고 7일 요청했다.
공정위는 다음날 곧바로 연장 요청을 불허했다. 이미 심사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두 회사와 공정위 심사관간 충분한 논의가 있었고 과거 사례에 비춰 의견제출 기한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또 통상적으로 기업결합 사건은 심사보고서를 받기 이전에도 주요 쟁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데다 이번 사건의 경우 이미 의견제출 기회도 충분히 보장됐다고 판단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SK텔레콤 ·CJ헬로비전은 공정위 사무처와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정위 사무처가 7개월 이상의 장고를 거쳐 내린 결정이어서 끝내 번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위, "1위 사업자간 결합안에 상응하는 조치…다른 기업이라면 결과 다를 수도"
특히 가장 쟁점이 된 경쟁제한성과 관련, 공정위는 "이번 기업결합이 이뤄지면 23개 지역 유료방송시장과 이동통신시장에서 경쟁압력이 크게 감소하고 결합당사회사들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커짐으로써 해당 시장에서의 독과점적 구조가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23개 지역 유료방송시장 대부분에서 50% 내외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케이블TV 플랫폼사업자 CJ헬로비전과 케이블TV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IPTV 플랫폼사업자 중 강자인 SK브로드밴드가 결합할 경우, 지역시장에서 경쟁압력이 크게 감소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알뜰폰 1위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SK텔레콤이 인수하면 이동통신 소매시장에서 경쟁제한성이 나타날 여지가 많다고 공정위는 강조했다. 이동통신 도매사업자인 SK텔레콤과 도매서비스의 최대 수요자인 CJ헬로비전의 결합 시 KT, LG유플러스(U+) 등 경쟁 도매사업자들의 판매선이 봉쇄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정위가 사건을 오랫동안 끌어오다 최근 들어 뭔가에 쫓기듯 결론을 서둘렀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공정위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안이 국내 최초의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간 기업결합 시도인 만큼 관련 보고서, 국내 ·외 사례 등 방대한 관련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심도 있게 심사했다"며 "불허 조치는 유료방송시장, 이동통신 도 ·소매시장 등에서의 경쟁제한 폐해와 독과점 구조 고착화를 근원적으로 방지함으로써 소비자 피해를 예방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조사 기간이 짧았다면 또 졸속처리라는 비판이 따라왔을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60일간 조치 방향을 결정하고, 이후 조치 수준을 결정하는 시간은 거의 무기한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공정위가 방송통신시장의 구조조정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에 대해 신 사무처장은 "경쟁제한 정도가 강한 각 분야 1위 사업자간 결합안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렸을 뿐"이라며 "이번 건보다 경쟁제한성이 낮은 기업결합이라면 조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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