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놓친 것들<상>…지자체 여론전 몰두한 배경
연구용역 맡은 ADPi, 이번주 최종 후보지 발표
선정 기준 등 비공개 원칙…오히려 공성성 훼손
정부, 정치권 의식해 실기…후폭풍 우려 높아져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서병수 부산시장이 20일 오후 국회를 찾는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직(職)을 건 그는 가덕도가 최적의 입지임을 강조할 작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주 대구·울산·경남·경북은 공동으로 '남부권 신공항은 대한민국 백년대계입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고 밀양에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신공항 입지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대구·울산·경남·경북의 밀양과 부산의 가덕도로 영남의 입지유치 여론은 극명하게 갈려있다. 정치권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시민 등까지 모두가 가세한 모양새다. 과열 경쟁 속에 '필승론'과 '필패론'이 난무한다.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들도 연일 성명전을 벌이고 있다. 부산 지역에서는 시민단체들 뿐 아니라 종교계까지 나서 연일 성명을 발표하며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후보지가 발표된 이후 탈락지역의 극렬한 반대 등 후폭풍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 정도로 영남이 갈리게 된 이유는 정부의 비밀주의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정부는 연구용역을 맡긴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을 통해 이번 주 최종 후보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23일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까지 평가항목과 배점 등에 대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입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항목이나 배점이 유출될 경우 각 주체들의 개입이 불가피,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논리에서다.
하지만 인천공항이나 고속철도 등 국책사업의 경우 먼저 기본 원칙을 공개하는 것이 갈등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선호시설이든 기피시설이든 입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투명하게 기준을 제시하면서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사전타당성 용역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맡겨 신공항 입지를 국제적 기준에 입각해 공정하게 결정하려고 했으나, 철저한 비밀주의로 인해 오히려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적 의식 수준이 이제는 정부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따라오기만 해)식 정책추진에 공감을 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부산지역에서는 밀양으로 입지가 정해져 있으니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산이 많은 편인 밀양을 두고 고정장애물 평가기준이 얼마나 되는지 논란이 불거진 것은 평가기준이 공개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더욱이 가덕도를 지지하는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적 지지 기반인 TK에 '신공항 선물'을 안겨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반면 밀양을 지지하는 측은 대선 유세 당시 "부산시민들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신경을 쓰고 있다. 정치적으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많기 때문에 더더욱 정부의 비밀주의는 결과 발표 후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지난 15일 동남권 신공항 부지 선정 결과 발표 때 선정 방식과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다는 방침을 재천명했다.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순서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신공항 입지 선정의 기준을 제시하고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해도 향후 경제성 등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면서 "외국 컨설팅 업체를 통해 발표한다 해도 양쪽 모두 쉽게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외 사례에서 볼 때 국책사업을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설명과 설득을 해야만 사회적 갈등이나 후유증이 줄어든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기피시설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대표적이다. 2005년 경북 경주로 입지가 확정됐는데, 이는 방폐장의 필요성이 공론화된 지 21년 만의 일이다. 기피시설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되 주민투표 찬성률이 높은 지역을 선정한다는 기준에 공모 신청지역이 모두 승복했다.
정치권에서조차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역구를 두고 있는 정치인이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현재 신공항에 대한 정치권의 모습은 이해관계 조정이나 타협보다 갈등 조장에 가깝다"고 말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신공항 입지 문제에 정치 논리는 배제돼야 한다"면서 "국익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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