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롯데케미칼이 그룹의 비자금 조성 핵심 통로로 지목되면서 케미칼에서 근무하는 내부 직원들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에탄크래커 합작사업의 기공식을 열며 국내 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석유화학시장에 진출했지만, 총수 일가 비자금 의혹을 향한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로 미소 짓지 못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15일 롯데케미칼의 한 직원은 "하루 빨리 마무리 되길 바라는 게 직원들 마음이죠"라며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다른 직원은 "신동빈 회장이 애정을 갖고 있는 회사가 (비자금 조성)진원지로 지목받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90년 입사한 이후 이곳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그룹 경영 토대를 쌓아온 핵심 계열사다. 신 회장은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입사하면서 한국롯데 경영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이후 신 총괄회장이 다져온 유통과 함께 석유화학 사업을 그룹의 양대 축으로 성장시켰다. 아버지가 유통업을 통해 오늘의 롯데를 일궜다면 자신은 석유화학을 통해 롯데 도약의 기틀을 만들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에 애착을 갖은 이유다.
전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롯데케미칼과 에탄크래커의 합작사업 기공식에도 신 회장이 직접 참석했을 정도다. 그러나 신 회장을 비롯한 롯데 수뇌부는 한국 기업이 미국 석유화학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기념비적인 이번 합작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착잡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은 엑시올을 아예 약 4조원대에 인수해 글로벌 12권 석유화학 기업으로 도약할 포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검찰의 롯데 총수 일가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자 계획을 철회했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대표는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로 기공식에 참석조차 못했다.
한편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해외에서 원료를 사오는 과정에 중간에 계열사를 끼워넣는 식으로 거래가를 부풀려 자금을 빼돌렸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이 포착한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의 해외 비자금 의혹은 원료를 수입할 때 대금을 과다 지급한 뒤 일부를 거래에 필요하지 않은 중개업체에 빼돌리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무역업을 하는 협력업체 A사의 홍콩법인을 통해 동남아시아산 석유화학 원료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해외 계열사인 일본 롯데물산을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이 같은 방식으로 2010년부터 최소 3년간 200억원대 해외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이 동원된 만큼 신동빈 회장(61)의 주도로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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