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됐다고 연금까지 단절될 순 없다.
지난 5월 열린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민연금 법률개정안이 통과됐다. 한꺼번에 워낙 많은 법안이 통과되다 보니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번 법률 개정안에는 경력단절 전업주부와 같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을 담겨 있다. 그러면 이번 11월 말에 시행되는 국민연금법 개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제 경력단절 전업주부도 추후납부 할 수 있게 된다.
직장인은 사업장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다달이 보험료를 납부한다. 그렇다면 퇴직한 다음에는 보험료를 계속해서 납부해야 할까? 대답은 퇴직 당시 나이와 배우자 상황에 따라 다르다. 먼저 퇴직 당시에 나이가 만 60세가 넘었으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필요가 없다. 아직 60세가 안됐다면 배우자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우선 배우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때 퇴직자는 사업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한 다음 계속해서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다만 도저히 보험료를 낼 능력이 안되면 국민연금공단에 보험료 납부를 유예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납부예외' 제도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납부예외기간 동안 미납한 보험료는 나중에 다시 납부할 수 있는데, 이를 '추후납부'라고 한다.
국민연금 가입자 입장에서 납부예외를 신청하면 당장 보험료 부담을 덜 수 있어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납부예외 기간이 길어지면 은퇴 후 노령연금을 못 받거나 받더라도 적게 받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노령연금은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기간이 10년 되어야 하는데다, 노령연금 수령액도 보험료 납입기간과 납부한 보험료에 비례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 중에 부랴부랴 추후납부를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엔 배우자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에 가입하고 있거나,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경우를 살펴보자. 아마 출산이나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대부분 전업주부가 여기 해당될 것이다. 이 경우 전업주부는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이는 본래 전업주부의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로 만든 그런 것인데, 이로 인해 전업주부가 추후납부를 할 수 없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게 됐다. 경력단절 전업주부는 국민연금 의무가입대상이 아니므로 납부예외를 신청할 필요도 없고, 납부예외기간이 없으니 추후납부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독신은 추후납부를 할 수 있는데 반해, 배우자가 있다고 추후납부를 못한다고 하니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이번 법률 개정으로 경력단절 전업주부도 추가납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업주부는 모두 추후납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추후납부를 신청하려면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과거 국민연금 보험료를 한번이라도 납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과거 가입경력이 없으면 추후납부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상태라야 한다. 따라서 국민연금 미가입자라면 임의가입을 신청해 국민연금 가입자격부터 회복해야 추후납부를 할 수 있다.
추후납부 신청을 할 경우 보험료는 얼마나 내야 할까? 현재 사업장가입자나 지역가입자로 국민연금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사람은 이번 달에 납부한 보험료에 그 동안 납부하지 않은 기간을 곱해서 계산된 금액을 납부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번 달 보험료가 30만원이고 10년간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면, 30만원 곱하기 120개월을 하면 추후납부 보험료는 3,600만원이 된다. 다만 임의가입자는 보험료 납부 상한선을 시행령에서 별도로 정할 예정인데, 현재 18만원 정도가 논의되고 있다. 추후납부 보험료는 한꺼번에 낼 수도 있고 여러 번에 걸쳐 나눠낼 수 있다. 현재 분할납부는 최장 24회로 되어 있는데, 이번에 법률을 개정하면 60회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3년 이상 보험료 냈으면 유족연금과 장애연금 받는다.
국민연금에는 유족연금제도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과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인 자, 현재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자가 사망하면 유족에게 기본연금의 40~60%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달 연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족연금 조건이 경력단절 전업주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지적 받아 왔다. 경력단절 전업주부는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니므로 과거 가입기간이 10년 이상 안는 경우 사망하더라도 유족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동일한 조건에서 미혼?이혼?사별하고 혼자 사는 여성이 사망하면 가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이들이 비록 납부예외를 신청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국민연금 가입자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면서 이점도 개선했다. 현재 유족연금 지급조건에 더해, 국민연금 미가입자라도 최근 5년 동안 3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이 사망하면 유족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육아를 위해 지난해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로서는 이 여성이 사망하더라도 유족에게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과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법률이 적용되는 11월말부터는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최근 5년 중 3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 유족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기간도 늘어났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사망하면 유족에게 3년간은 유족연금을 지급한다. 이후에는 유족연금 수령자가 55세가 될 때까지 연금지급이 중단된다. 다만 유족연금 수령자가 소득이 있는 업무에 종사하지 않으면 계속해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녀가 만 19세가 안된 경우에도 계속해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때이다. 하지만 사실상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부모가 부양하는 현실을 감안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왔다. 그래서 개정된 법률에서는 자녀가 대학졸업 할 때까지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자녀기준연령을 19세에서 24세로 상향했다.
장애연금 수령요건도 완화됐다. 장애연금이란 국민연금 가입자가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이 완치됐지만 장애가 남은 경우 지급해 주는 연금이다. 그런데 경력단절 전업주부 입장에서 보면 장애연금이 유족연금보다 차별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유족연금은 그나마 과거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면 지급되지만, 장애연금은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과거 가입기간이 길어도 지급 자체를 하지 않는다. 경력단절 전업주부는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법률 개정에서는 유족연금과 마찬가지로 과거 국민연금 보험료를 10년 이상 냈거나, 최근 5년 동안 3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는 등 조건이 맞으면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꿨다.
노령연금과 유족연금이 중복될 때 수령금액 늘어난다.
최근 맞벌이부부와 국민연금 임의가입자가 늘어나면서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경우 부부가 모두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두 사람 모두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 이상 되면 연금수급연령이 됐을 때 두 사람 모두에게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남은 사람은 본인의 노령연금과 배우자의 유족연금 중 하나를 선택해서 수령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은 한 사람이 두 개의 연금을 중복해서 수령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살아남은 배우자는 둘 중 큰 것을 선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배우자 유족연금이 80만원이고 본인 노령연금이 50만원이면 유족연금 80만원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배우자가 사망한 다음부터 80만원을 연금으로 받게 된다. 이번엔 반대로 본인 노령연금이 80만원이고 배우자 유족연금이 50만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유족연금을 포기할 것이다. 이렇게 유족연금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포기한 유족연금의 20%를 본인의 노령연금에 더해 받을 수 있다. 즉 이 사람은 배우자가 사망한 다음에는 본인 노령연금 80만원에 10만원을 더해 90만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번 법률 개정으로 유족연금을 포기했을 때 연금지급비율을 기존 20%에서 30%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앞서 사례에서 연금 수령액은 95만으로 늘어나게 된다.
분할연금 청구기한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국민연금에는 분할연금 제도가 있다. 부부가 이혼할 경우 결혼생활 동안 함께 형성한 노령연금을 나눠 쓰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분할연금을 청구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결혼생활기간 중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이 5년 이상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혼한 배우자가 노령연금 수급연령에 도달해야 하고, 본인 또한 노령연금을 수령할 나이가 돼야 한다. 이 세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3년 안에 분할연금을 청구할 수 있다. 만약 3년 내 청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된다. 하지만 3년이라는 청구기한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래서 이번 법률개정에서 청구기한을 5년으로 늘렸다.
그리고 이혼한 부부가 재결합 할 경우 분할해서 받던 연금을 다시 합칠 수 있도록 했다. 합쳐봐야 연금액은 똑같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연금을 합치게 되면 한 사람은 노령연금 수급권자가 되고 나머지는 부양가족이 된다. 노령연금 수령자에게 배우자가 있으면 부양가족연금 연24만6900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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