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육담' - 조선 훈남 임제와 '미스 평양' 기생 한우의 섹스맞장구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래지 않은 옛날에 부부금실이 좋은 수말과 암말이 살았는데 그만 수말이 급사를 하고 말았능기라. 졸지에 서방을 잃은 암말이 앞발로 땅을 치며 히힝 힝, 통곡을 하는데 차마 눈 뜨고는 못 봐 주겠능기라. 이웃 마을에서 문상 온 수말들이 딴에는 위로의 말이라고 한 마디 건네는데 ”할 말이 없습니더“하능기라. 할 말(馬)이 없다고 그러자 통곡하던 암말이 대답하능기 또 걸작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더.“ 수말의 동생이 ”형수요, 우야믄 좋겠습니꺼. 드릴 말이 없습니더.“ 암말이 남편의 무덤에서 ”여보, 당신이 죽고 없으니 아무 말이나 할 수도 없고 해 줄 말이 하나도 없습니더. 우야믄 좋겠습니꺼?“ 그때 그 말을 들은 온 마을의 수말들이 떼를 지어 달려오니 ”여보, 할 말 안할 말 모르겠습니더. 할 말 안할 말 가리는 방법 좀 알려주이소.“ 결론. ”여태까지 한 말은 그야말로 말도 아니었다카이.“
‘객주’의 소설가 김주영(70)은 1996년 강원도 평창군 둔내에서 열린 ‘문학인과 독자의 문학캠프’에서 그야 말로 걸쭉한 육담(肉談)을 쏟아내 참석한 좌중의 배꼽을 쥐게 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48)는 2006년 ‘팔도 음란서생들의 남녀 상열지사’라는 부제가 붙은 ‘육담’이란 책을 펴내면서 저 이야기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육담도 지역마다 색깔이 있고 특징이 있어서, 충청도는 양반 동네라 그런지 육담도 점잖고 완곡하고, 강원도는 아예 남녀의 성기를 풍자하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게 많으며, 또 경기도는 서울 근처라서 그런지 양반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육담이 많고, 경상도는 신라의 수도 경주가 있어서 그런지 육담에 왕이 등장하는 게 꽤 있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육담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는 아직도 육담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육담(肉談)을 우리 말로 풀어 ‘고기 이야기’라고 한다. 문화혁명 당시에도 조선족들은 일이 끝나면 숙사에 모두 모여서 육담으로 하루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었다. 이들에게 고기 이야기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유교 성리학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세상 금기들의 저고리 고름을 푸는 육담은 우리의 가식과 위선을 반성하게 하는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 사실이다.
조선 사회는 전기와 후기가 전혀 다른 국가처럼 이질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16세기와 17세기를 그것의 분기점으로 삼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전쟁은 조선을 뒤흔든 치명적인 외침(外侵)이기도 했지만 내부의 신분 질서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남녀간의 질서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 전란 이후이다. 16세기 이전의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거나 때로는 우월적 지위를 누린 흔적이 있다는 역사 리포트들이 상당히 나와 있다. 여성이 천대받고 억압받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된다. 성리학이 번성하고 당쟁이 체질화되어가는 시기와 여성의 지위 후퇴 또한 비슷하게 맞물려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조선을 주름잡았던 빼어난 여인들은 대개 16세기 사람들이다. 남자들을 조롱하고 삶의 자유를 구가했던 평양의 황진이는 서경덕(1489-1546)과 사귀었던 사람이니 16세기 여인이고, 홍원 기생 홍낭, 서녀 시인으로 첩이 되겠다고 달려갔던 이옥봉, 시와 거문고로 지방의 아전들을 비롯한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부안 기생 매창. 이 사람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사람들이다. 여권(女權)이 나름으로 보장되던 시절에 그들은 독특한 자기의 향기를 내며 삶을 빛냈다. 왜란 이후의 기생들은 자신의 의지보다 남자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는 형태로 바뀌어가는 듯 하다.
여성이 남성과 비교적 평등한 지위를 누리던 시절에는 육담도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임제(1549-1587)의 연인인 평양 기생 한우(寒雨)도 16세기의 여인이다. 연인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못잊어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의 앞 뒤는 시간의 지우개가 다 지워버리고 결정적인 과정인 육담에 근접하는 시(詩)만 보인다. 16세기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와 좀 다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육담(肉談) 자체가 사랑이다. 사랑하면 옷을 벗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이 전부요 핵심이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느니, 헤어졌지만 사랑한다는 식의 헷갈리는 ‘정신적 사랑’은 당시엔 존재할 수 없었다. 사랑이 곧 육담이었으니, 육담이 추하게 느껴질리 없고 짐승같다며 내숭을 떨 이유도 없었다.
임제는 나주 출신으로 유명한 풍류객이며 시인이었다. 풍류객이라는 건 멋지게 표현한 것이고 요즘 말로 하면 바람둥이이다. 당대의 여인들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한 시대 앞선 사람인 황진이 묘 앞에서 술을 따르며 시를 읊었던 사람이니 오죽할까. 무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장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성격이 호방하고 구속을 참지 못했던 사람인지라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는 항우를 추모하는 글(弔項羽賦)을 썼다가 임금인 선조에게 찍히기도 했다. 아마도 문약한 나라의 폐단을 지적하고 무용과 기개를 높이 사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서는 이렇게 평하고 있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고집이 있어 벼슬에 높이 오르지 못하였으며 선비들은 그를 법도 밖의 사람이라 하여 사귀기를 꺼려 하였으나 그의 시와 문장은 서로 취하였다.”
당대 남자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을지 몰라도 여자들에게는 달랐다. 퉁소를 잘 부는데다 씩씩한 무부(武夫, 무신)이며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시인. 거기다가 욕심도 없으며 쩨쩨하지도 않은 분이니, 요즘의 ‘완소남’을 닮아 있지 않은가. 문과에 급제한 뒤 제주목사인 아버지를 뵈러 제주도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그는 뱃전에 앉아 태연히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옆에 놓여있던 괴나리봇짐 속에는 임금이 내린 어사화(御史花) 두 송이와 거문고 하나, 그리고 칼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이런 소문들이 당시인들 왜 돌고돌지 않았으랴? 그래서 ‘사귀어보고싶은 남자’ 리스트에서 임제는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임제가 서른 네 살일 때인 1583년. 평안도사였던 그는 평양에서 ‘오빠부대’를 몰고다니는 멋쟁이었다. 그런데 한우(寒雨)라는 기생만은 워낙 도도해서 ‘임제면 다냐? 실속없는 소문일 뿐이지’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이름조차 ‘미스 찬비’이니 쌀쌀맞음을 아예 브랜드로 내세운 여인이 아닌가. 얼굴에 냉기가 돌수록 뭇사내들은 환장하는 법이어서, 미색에 홀린 자들이 줄을 서서 그녀에게 구애를 했지만 찬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소문을 들은 임제가 가만 있을 리 없다. 그래? 그렇게 도도해?
늦가을 비 내리는 날, 그는 나귀를 타고 퉁소를 불면서 한우가 있는 기루(妓樓)를 지나간다. 옛날 황진이한테 벽계수가 했던 그 수법이다. 그러면서 임제는 그 우렁찬 목소리로 시조를 노래로 읊조린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요즘처럼 기상청이란 게 있어서 날씨 예보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을테니 북쪽 하늘이 맑다고 한 것은 졸개나 하인들이 일러준 정보였을까. 어쨌거나 그냥 가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도롱이를 입지 않았다. 산을 지나는데 눈이 온다. 다시 마을로 내려가니 이번엔 비가 온다. 눈도 맞고 비도 맞았다. 비만 맞아도 찬데, 눈 위에 비를 맞았으니 얼마나 찬비이겠는가. 그냥 찬비면 털고 갈 수 있겠으나 눈비 섞인 비인지라 몸이 얼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임제는 ‘얼어잘까’라는 말을 집어넣기 위해 산설야우(山雪野雨)라는 기막힌 날씨를 연출해낸 것이다. 속뜻을 살피지 않는다면 그냥 담담하고 아름다운 시이다. 그렇지만 이 시의 매력은 속옷 한 꺼풀을 벗겨낸 그 속에 들어있는 중의법(重意法)에 있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북쪽 하늘은 평양 기방을 말하고 ‘맑다’는 것은 그곳의 지조가 높다는 칭찬을 담는다. 평양 기생들은 가무와 문장과 자색이 최고라더라. 그런 말을 내가 듣고 왔노라. 이 얘기다. ‘비를 피할 장비’는 뭘까. 요즘 같이 풍선류의 장비(裝備)나 비아그라류의 약품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리라. 다만 삼류기생들의 어쭙잖은 농락에 놀림감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우장’ 따위는 놔두고 왔다는 얘기일 터이다. 워낙 뛰어난 분이 많은 평양 기방에 와서 내가 굳이 무슨 엔터테이너 노릇을 하기 위해 별도로 준비를 해오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렷다.
산에는 눈, 들에는 찬비로다
오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워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와보니 ‘찬비’님이 기다려주고 계시는군요.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오늘은 ‘미스 평양’이신 한우가 맞이하여 주었으니 함께 어울려 잠을 자볼까 하노라. 칼이 드디어 나왔다. 그야말로 단도직입이다. ‘얼다’(凍)와 ‘어울리다’(交)의 두 표현이 비슷한 음값을 지닌 것을 활용해, 찬비 맞았으니 당연히 어울려 자야하지 않겠느냐고 교묘하게 비약한다. 하지만 한우가, 천하 얼짱 오셨다고 그냥 “아, 예 서방님”해버렸다면 분위기에 지진이 난다. 그랬던 임제가 시시하다며 그냥 홱 돌아서 가버렸을지 모른다. 한우는 김칫국을 우아하게 마시는 임제에게 한편으로는 반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싸구려로 보이니?”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가야금 줄을 잡는다. 시에는 시로 얘기해야 한다. 그게 이 시절 이 사회의 문법이다.
어이 얼어자리 므스 일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어찌 귀하신 몸이 얼어 주무시겠습니까? 귀하신 걸음을 하셨는데 무슨 일로 얼어 주무시겠습니까? 나으리가 바보도 아닌데 예까지 와서 길에서 얼어주무실 까닭이 있겠습니까? 밖에서 비 맞고 왔다고 꼭 얼어 자야하는 건 아니지요. 집에는 둘이 베고자는 두동다리 베개와 아름답고 따사로운 이불이 널려 있으신데 그건 다 어디 쓰시려고 한데서 주무신단 말씀입니까? 이까지는 아주 평이해 보인다. 여기서 반전이 없었다면 임제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행은 임제가 읊은 구절에서 ‘얼어’를 ‘녹아’로만 바꿨다. 이게 시(詩)의 눈이다. 오늘은 찬비를 맞으시느라 수고했으니 몸을 잘 녹이셔야 하옵니다. 그런 뜻도 되지만, 원래 눈이라는 것이 비를 맞으면 녹게 되어 있다. 비가 먼저 오고 눈이 많이 오면 얼어잘 수도 있겠지만 눈을 맞고 비를 맞았으니 녹는 게 당연하다.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 공략한 임제를 더욱 정밀한 자연과학으로 응수한 것이다. 비 맞았는데 왜 어느냐고요? 눈 맞아야 얼지? 그것도 모르시나요? 이런 어퍼컷이 숨어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이 시 또한 중의법의 천국이다. 속옷을 벗겨보자.
어이, 얼어자리 므스 일 얼어자리
왜 내가 당신하고 어울려 잡니까요? 나는 뭐 보는 눈 없고 재는 이치 없는 줄 아세요? 무슨 일로 당신하고 잡니까요? 웃기고 계십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랑 많이 그런 일 해보신 모양인데 꿈 깨시는 게 인생 피곤 덜 쌓는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은 부부가 자는 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이다. 여보세요. 임제씨. 댁의 마누라 계신 곳에 가셔서 주무셔야죠. 어디 와서 한댓잠 자겠다고 드러눕습니까요? 둘이 날이면 날마다 베고 자던 원앙침은 어느 시궁창에 말아먹고 얼어잔다는 둥 그런 말씀 하십니까? 비단 이불 싫증 나면 뛰어오는 데가 ‘한우 마사지센터’인 줄 아십니까? 내가 정말 못 살아. 이 정도까지 진도 나가면 천하의 임제라도 간의 사이즈가 절반쯤 줄어들게 되어 있다. 마누라에게로 ‘고 홈’하라는데, 뜨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역시 한우이다. 반전의 명수임에 틀림없다. 클린 히트로 다시 모신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그래요. 원앙침 비취금. 오늘은 잊어버리세요. 내가 그것보다 퀄리티가 조금 더 뛰어나니까요. 오늘한 특별한 한우를 만났으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뼈와 살이 타는 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녹아 잘까’이다. 세상 시름으로 욱신거리는 삭신까지 다 녹여줄테니 얼른 이리 들어오세용. 지금까지 핀잔주고 퉁바리 맞히고 혀 내밀던 찬비가 천하의 요부로 변해서 찹쌀떡 달라붙듯이 찰싹 임제의 가슴으로 들어와 앉는다. 임제는 오면서 전략짜고 대응 시나리오 고치고 했겠지만 한우는 그럴 틈도 없었다. 하지만 순발력이 준비를 이겼다. 퉁소 가락이 가야금 한 줄에 나가 떨어졌다. 그렇다고 임제가 억울해할 일은 아니겠고, 한우 또한 오랫동안 은근히 기다렸던 ‘그분’이 제발로 굴러들어 온 것이니 찬 빗방울 더운 빗방울 아낄 건 없다. 눈치 보아 어떻게든 ‘얼어’자려고 왔던 임제가, 한우가 총동원하는 사랑의 기술들을 맛보며 이날 밤 제대로 ‘녹아’자게 생긴 사건. 16세기 육담은 시조 속에 흥건하게 흐른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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